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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체험기 #18 - 저는 탁구공인가요. 핑퐁하지 말고 제발 치료해줘요. (2차병원에서 다시 상급종합병원으로 응급실행)

  같은 증상으로 두 번째 응급실 방문을 했다. 응급실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뻔했기 때문에 정말 오기 싫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와서 조치 받는 수 밖에는... 갈색토하고 열나고 설사하고 난리치고 있으니, 일단 당장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응급실에서의 대응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같은 원인으로 또 왔으니 입원을 해서 검사해보고 치료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입원가능한 병실이 특실 밖에 없다. 특실에 입원할 거 아니면, 일반 병실이 나는걸 24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안나면 다시 2차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 정말 힘들었지만, 도저히 1일에 120만원 하는 곳에 입원할 자신은 없어서, 자리가 나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지만, 역시나 24시간 내에 병실이 나지 않았다.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알 것 같다. 자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단지 우선순위에 밀렸을 뿐. 분명히 문제가 있어, 반복적으로 이렇게 응급실에 오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어떠한 대응도 해주지 않고 계속 2차병원으로 보낸다. 이번에는 인천힘찬종합병원으로 전원결정이 났다.  힘도 돈도 없는 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보내는대로 무기력하게 흘러간다. 처음 오는 인천힘찬병원은 지금까지 입원했던 병원들 중에 가장 쾌적했다. 넓은 개인공간과 깔끔한 입원실. 친절한 간호사. 문제가 있다면, 내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이 곳에와서도 고열, 구토, 설사 등이 계속 되었고, 거의 매일 같이 하는 피검사에서는 염증 수치가 계속 높아져 갔다. 항생제니, 구토방지제니, 지사제니 하는 온갖 약들이 듣지 않았다. 마치 TPN 수액을 몸 속에서 넣어서, 구토와 설사로 배출해 내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깨어있으면 주기적으로 구토와 설사를 했고, 열이 오르면 또 비몽사몽 하다 잠이 들었다. 시트와 옷을 하루에 몇 번씩 갈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힘찬병원의 담당 의사가 항복 선언을 했다. 염증이 증상을 아무리 조절하려해...

암 체험기 #17 -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 (기약없는 입원대기, 다시 응급실 행)

  2차 병원으로 전원되어 입원을 하면, 병원에서는 적극적인 치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병원의 의뢰에 따라 현재 당장 직면해 있는 환자의 통증이나 증상을 가라앉히고, 상태체크를 하여 더 악화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조치만 해 준다.  만약 그러다가 환자의 상태가 안정되지 않고 좋아지지 않는다면, 다시 상급병원 응급실로 보내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받은 의뢰는 항생제로 높아진 염증 수치를 낮추고, 구토와 설사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 이었던 것 같다. 입원 해 있는 동안에도 계속 구토와 설사, 산발적으로 오르는 열로 인해 정신 차리기가 힘들어서 입원해 있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감하지 못 할 정도였다.  다행히 검단탑병원에서 담당 주치의가 된 의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한 전문의였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치료받았는지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 병원에서 자신에게 요구한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거기다 서울아산병원에서의 내 주치의 교수님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더 신경을 써준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검단탑병원의 입원 병동 시설은 서울 아산병원의 병동보다 더 개인공간이 넓어 쾌적했지만, 병동에 보호자나 면회객들이 수시로 마음대로 드나들어 통제를 하고 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처음 입원받을 때 안내 받은 내용에는 면회가능일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입원 해 있는 동안 꾸준히 항생제와 구토방지제, 지사제, TPN, 비타민 전해질을 꾸준히 투여받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염증수치가 낮아지고, 구토와 설사 증상이 완화되었다.  일주일 후, 염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구토가 멈추고, 설사가 하루 1회로 줄었을 때, 나는 퇴원을 요청했다. 이제 죽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틀 뒤 주치의의 진료가 있는 날 이었다. 이 때까지만 버티면 문제가 확실해 져서,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뒤, 진료 날이 되었다. 검...

암 체험기 #16 - 사이람자 너 마저... (2차항암 치료 실패, 증상)

사이람자 라는 항암제는 암세포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혈관을 만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혈관 형성 억제제' 계열의 표적항암제 이다. 주로 진행성, 전이성 암 치료에 사용되고, 위암의 경우 1차 항암치료 후 병이 진행되었을 때 사용한다. 위암에서 복막으로 전이된 나는 수술 이후에도 이 사이람자와 파클리탁셀을 병용하여 항암치료를 받았다. 파클리탁셀로 인한 탈모로 머리를 밀긴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아 1차 항암치료에 비하면 매우 수월한 느낌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아도 울럼거림이 없다니... 표적치료제 만세. 평온한 항암치료는 약 두 달 간 진행되었고 7회차 항암치료. 사이람자만 치면 4회차 항암치료 다음 날 부터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음식을 다시 넘기지 못하는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까지 음식을 먹으면 3분의 2정도는 거뜬히 먹고 컨디션이 좋은 낳에는 1인분도 다 먹을 정도로 회복 되었는데 그 날을 기점으로 먹는 양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하루에 설사를 10회 이상을 하고 먹을 때마다 토해 내는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토 색깔이 커피색으로 진하게 바뀌었다. 토할 때 냄새와 맛이 역해졌다. 흡사 입으로 설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38도를 넘는 열이 하루 이상 지속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자정을 넘긴 새벽시간대의 응급실은 낮시간보다 사람이 많다. 나는 열도 나고, 계속 토하느라 봉투를 입에 대고 있는 상태인대다가 식사를 제대로 못한지도 오래되어서 있을 힘도 없었지만 응급실을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기했다. 응급실인데 응급환자가 들어가지도 못한다. 나 처럼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호명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스무명 정도는 되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마치 외래진료 차례를 기다리듯 다들 평온해 보였다. 나는 숨 넘어갈 것 같이 힘들었는데... 응급실 밖에서 한시간 반여를 끙끙대면서 대기하자 겨우 나를 불러서 수속하고 조치를 해주기 시작했다. 내 차트를 확인한 ...

암 체험기 #15 -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들어볼께요. (교차검증, 고대구로병원 복강내항암)

    두 번째 옵션을 알아 보기 위한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다니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잘 해주겠거니... 하고 전적으로 맡겼었는데, 이렇게 다른 병원을 알아보자니 왠지 바람피우는 행위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 목숨을 걸고 상대는 신경쓰지도 않는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타 병원에서 진료를 이어서 받고 싶으면,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의 소견서와 진료기록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담당 의사에게 요청해야한다. 즉, 내가 따로 알아보고 있다는 것을 담당의사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냥 얼굴 두껍게 생각해야지. 서울아산병원의 규모와 인파에 익숙해져있어서인지, 고대구로병원은 아담하고 한적하게 느껴졌다. 복강내항암은 위장관외과에서 하고 있는 항암치료 임상실험이었다. 항암치료는 종양내과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복강내에 항암제를 직접투약하는 방식이라서 그런가보다. 알아보니 복강내항암이라고 해서 배에 주사를 찔러 넣는 방식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배에 케모포트를 심어서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의사는 일단 지금 예정되어있는 사이람자 항암을 우선적으로 시도해 보고, 치료가 잘 되면 좋겠지만 혹여 잘 되지 않았을 때의 대안으로 자신에게 오는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주었다. 자신의 임상실험만 생각한다면 바로 참가해 주시는게 본인에게는 좋다고 넉살스럽게 웃으며 덧붙이는게 왠지 신뢰가 갔다. 이 실험을 담당하는 의사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의사들과는 다르게 이것저것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내 가족에게 한다면 이렇게 할 거 같다는 식으로 최대한 환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솔직히 이 곳에서 의견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미리 다른 수단들을 알아보는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머리 한 구석에 가지고 있었다. 아내가 알아보자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다녔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추후에 상황은 그 때가 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알아보는게 더 효...

암 체험기 #14 - 믿어야 할까? 따로 살 길을 찾아봐야 할까? (임상실험, 다른 치료법, 교차검증 고민)

  이 때쯤 부터였다. 그 동안,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지켜보던 아내가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다. 암이 3기일 때와 4기일 때, 보호자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듯 했다. 3기 일때는 잘 치료받으면 치료가 되겠거니... 하는 희망이 있지만, 4기 일때는 의사부터 이제 완치는 어렵고 연명을 목표로 치료한다고 하면서 치료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것이 많은 보호자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가족, 친구, 친구의 가족, 친구의 친구. 조금이라도 의료계나 제약계에 몸 담고있는 사람이 조언을 주면, 아내는 잘 듣고 정리해놨다가 내가 해당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어디인지 조사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알아본 내용에는 지금 현재 받고 있는 치료를 믿고 그대로 따르는 선택지 이외에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항암치료를 받다보면, 환자에게 보다 맞는 치료를 받게 하도록 유전자 검사도 권유 받는다. 나도 이러한 유전자 검사를 받았었고, 그 결과 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특정 유전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제약계의 지인을 통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내가 참여 가능한 신약 임상실험이 있고, 해당 임상실험의 약이 안정적이고 효과가 좋다는 것, 마침 그 임상실험 참가를 서울아산병원에서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복강내항암요법을 받는다. 이건 이번 사이람자 항암치료가 잘 듣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알아보자는 의견이었다. 나중에 필요할 때, 알아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또 몇 달이 더 걸릴지 참여할지 모르니 미리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항암요법은 고대구로병원의 위장관외과에서 주도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아산병원에서 두 번째 수술을 해주신 위장관외과의 의사선생님에게 이 고민 내용을 상담했더니, 당연히 여기저기 어떤 치료법이 더 좋은지 의견 들어보는 것이...

암 체험기 #13 - 새로운 제약사항을 획득하셨습니다. (두 번째 수술 후 일상생활 복귀)

두 번째 수술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일상생활에는 뚜렷한 제약사항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약사항 1. 소화액 역류가 심해, 몸을 45도 이상으로 눕히면 몇 분도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이 날 이후로는 거의 앉은 자세에 가까운 상태로 자야했고, 이 악조건에서도 그나마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서 모션베드를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소화액으로 인해 항상 가슴이 타들어가는 통증이 있었고, 이게 혹시나 수술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가... 수술 부위가 좀 아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버텼지만, 결국 세 번째 수술을 하기 전까지 이 증상은 지속되었다.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은 참기 힘든 울렁거림으로 심화되고 결국에는 소화액을 토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 증상이 조금 완화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제약사항 2.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 없게되었다. 맵고 짠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인 제약으로,  작은 김치조각만 먹어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순하디 순한 음식들만 먹으려니, 물려서 김치생각이 간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약사항 3. 수술할 때 삽입했던, PICC(말초삽입형 중심정맥관)를 그대로 달고 퇴원했다. 그래서 이 PICC를 관리하기 위해서, 이틀에 한 번씩 헤파린을 관에 주사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PICC 부위 드레싱을 해야한다. 특히 이 드레싱은 관부위를 깨끗히 소독하고, 새로운 PICC용 밴드로 교체하는 작업을 포함하는데 한 팔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내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제 진짜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관리도 안되는 상황) 또한, PICC가 삽입되어 있는 팔로는 이제 무거운 것 드는 것도 안된다. (=남성으로서의 기능상실) 이 PICC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많은데, 처음 PICC를 달았던 이유는, 중심정맥관용 수액으로 동일 시간 더 고용량의 영양을 공급받기 위해서 였다. 이걸 유지하면 앞으로 정맥주사도 이 관을 통해 맞을 수 있고, 채혈도 가능해서 정맥주사 맞을 때의 고통을...

암 체험기 #12 - 항암이고 수술이고 경력자인걸...(두번째 항암제, 두번째 수술)

  새로운 항암제로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꼭 처음 항암치료를 하는 것 처럼 교육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 맞게되는 항암제는 무엇인지. 치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현재 영양상태는 어떠한지. 식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이번에 맞는 항암제는 사이람자와 파클리탁셀 이라는 항암제인데, 사이람자를 맞을 때는 부작용으로 혈압이 오르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하고, 파클리탁셀은 부작용으로 손발 저림이나 감각이 무뎌지는 증상. 안면홍조와 탈모가 있다고 했다. 첫 항암치료 때, 옥살리플라틴의 손발저림 증상에 많이 고생했었던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얼마나 아플까하고 걱정했지만, 실제로 경험한 파클리탁셀의 부작용은 옥살리플라틴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평소에 손발을 따뜻하게만 유지하면 손발저림은 느끼지도 못하고 넘어가고, 다른 부작용들도 있는지도 모르게 넘어갔다.  다만, 내가 경험한 파클리탁셀의 가장 부작용은 탈모였다. 항암제를 맞고 딱 2주가 지나기 시작하자.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 씻을 때마다 얼굴과 몸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내는게 고생고, 자고 일어나서 베게에 장판처럼 깔려있는 머리카락들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머리를 밀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젤로다와 옥살리플라틴 맞을 땐, 괜찮았었는데..ㅠㅠ 사이람자의 부작용은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실제로 없었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번 항암치료는 부작용으로 인한 일상생활 불편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울렁거림이 없는게 너무 좋았다. 이전에 치료 받을 땐, 울렁거림 때문에 정말 고생했었는데... 이번 항암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기뻐할 일이었지만,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의사는 사이람자를 맞고 증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실제로 증상은 오히려 심화되었고, 진료를 다시 받으러 갈 때쯤엔 액체로 된 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동네 병원에서 맞는 ...

암 체험기 #11 - 위암이 식구가 늘어서 집하나 더 마련했다네요 (복막전이, 다시 항암치료 시작)

  CT 결과를 들었다. 복막으로 전이된 암이 소장의 윗부분을 눌러 고형 음식물을 넘길 수 없는 상태라는 결론이 나왔다. 암이 복막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에, 이제 수술은 불가능하고 완치보다는 연명을 목적으로 하는 항암치료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만난 의사들은 참... 인간미 없다. 빈말로라도 치료가 될 거라는 소리는 안 해준다. 이 진료실 바깥에 자기 차례를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의사를 더 기계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의사가 이제 기계적으로 다음 치료계획을 말해야 하는데, 아내가 운다. 이번 항암제는 사이람자와 파클리탁셀을 맞게 될텐데,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1주마다 맞는다고 한다. 1주차 : 사이람자 + 파클리탁셀 2주차 : 파클리탁셀 3주차 : 사이람자+ 파클리탁셀 4주차 : 휴약 (이후 다시 1주차 반복) 문제는 사이람자 라는 표적항암치료제 였다. 이게 원래 급여에 해당되는 약이었는데, 이번 정부(윤)에서 미쳐가지고 갑자기 비급여로 분류 되었다고 한다. 비급여로 할 경우 한 번 맞을 때마다 2백이 넘는 돈이 드는데, 투약 일정대로 맞으면 한달에 두 번은 맞아야 한다.  비용적인 부담이 있긴 한데, 현재 이 단계에서는 이게 가장 효과가 좋은 약이기때문에 이걸로 치료를 진행해도 괜찮을지 의사가 내게 물었다. 아직 부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직업병처럼 효율을 따지곤 한다. 치료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물었다. 어차피 이제 완치는 물건너간 단계라고 하는 거 같고, 치료를 하면 얼마나 더 사는지 궁금했다. 그만한 돈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생존 기간으로 치면 평균적으로 몇달정도 더 연명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몇달 더 살자고, 매달 사오백 정도 되는 돈을 치료비로 부어야 하는건가? 기가 막힌다.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겨우 몇 달 더 살자고.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치료를 받는게 의미가 있는지 물어보려고 입을 여는데, 몇 마디 제대로 못 하고 갑자기 울음...

암 체험기 #10 - 주치의에게 치료받고 싶다구요..ㅠ (2차 병원으로 전원 입원)

  병원에는 입원할 병실이 없다는데... 현재 나는 물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TPN 수액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지만, 응급실 규정상 이 수액은 또 응급실에서 놔줄 수 없다고 한다. (응급실에서는 나 같은 환자도 응급이 아니다...) TPN 수액 -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하기 어렵거나 장을 통한 영양 흡수가 불가능한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혈관(정맥)을 통해 직접 공급하는 방식 현재 증상의 원인은 위암의 복막내 전이로 소장 윗 부분을 막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고, 지금 내게 필요한 치료는 장폐색, 장마비, 염증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과 정맥을 통한 영양공급이다. 이 진단은 응급실에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다음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주치의의 의견이 필요하고, 그 진료를 받기 위해서 다음 외래 예약까지 5일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이 기간 동안에, 입원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집 근처 2차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 조치 까지 해준다 하였고, 당장 입원 가능한, 인천 연구수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나사렛병원 이어서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실은, 인하대병원이나 길병원 같은 대형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전원 조치하는 건 또 그렇게는 안된다고 한다. 하급병원으로 가야한다고... 뭐 이렇게 안되는게 많은지..ㅠㅠ 이때까지 2차병원에 입원해볼 일이 한 번도 없었기때문에 그냥 전원해주는 그대로 병원을 갔는데, 나사렛병원은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 이후로 두번 정도 응급실 전원될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 이후로 나사렛은 무조건 빼달라고 한다.) 나사렛병원으로 전원가면서 생긴 일들을 늘어놓자면... 1. 아산병원에서 전원 요청되어 접수되었음에도 수속시 전혀 모른다.   - 전원요청을 하면, 기본적으로 입원 요청이 가능하도록 병원간에는 이야기가 다 된 상황이다. 응급실에서 전원하는 환자는 전원받을 병원의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환자는 의뢰서와 이전 병원에서 진단받은 서류, C...

암 체험기 #9 - 매복이다! 음식이 내려가는 길을 막아라~! (암 재발을 알리는 이상신호)

25년 8월 말. 그동안 성인 1인분 양 정도는 문제없이 먹을 수 있게 회복되었던 식사량이, 갑자기 절반정도로 줄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윗배의 오른쪽 부분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음식이 자꾸 얹히는 듯하여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기 힘들었다. 9월 2일에 CT 촬영을 포함한 정기 추적검사 일정이 있었다. 며칠만 더 기다리면 검사 결과와 진료를 일정대로 들을 수 있었기에 버텨보자고 생각하고 버티며 하루이틀이 지나자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고형체의 음식만 먹으면 바로 토를 하는 수준이 되었다. 밥을 먹지 못하니, 먹는 것을 죽으로 바꿨지만, 다시 하루이틀정도 지나니 죽을 먹어도 넘기지 못하고 토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아직 액체는 넘길 수 있어서, 뉴케어로 식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추적검사가 끝나고 종양내과 외래 진료가 9월 10일에 잡혔다. 이제 일주일정도만 더 버티면 일정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테니 그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액체 위주의 식사를 하였다. 25년 9월 5일 75kg 이었던 몸무게가 며칠만에 70kg 로 줄었다. 상태는 더 악화되어, 뉴케어나 물을 마셔도 토를 하며 액체도 넘길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기 위해, 사탕을 입에 물고 있기 시작했다. 물은 못마시지만, 침을 삼키는 것은 가능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청포도, 복숭아, 스카치 캔디 같은 것을 입에 녹이면서 버티다가 포도당 캔디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함량의 포도당 캔디를 먹기 시작했다.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물마시는 것도 못하는데, 10일 외래진료까지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사탕만으로 버티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출발했다. 이때까지 왜 그렇게 응급실 가는게 싫었는지...  솔직히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응급실에 더 빨리 갔어야 했을건데... 지금 생각하면, 일단 한시간 반은 차끌고 가야하는 그 수고로움과 응급실에 가봤자 주치의가 보는 것도 아니라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 할 것이라는 불신 ...

암 체험기 #7 - 내 몸에 융단폭격 (항암치료)

  항암치료에는 표준치료법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항암치료로 처방받게 되는 약은  암의 종류, 진행정도에 따라 기본적으로 표준치료법에 맞는 약을 처방받게 된다. 표준항암치료법 수많은 임상 시험을 거쳐 현재 의학계에서 해당 암종과 병기에 대해 '가장 효과가 좋고 안전하다'고 공인된 치료법 을 말합니다. 위암 3기에 가장 많이 쓰이는 표준치료는 XELOX(젤록스) 라고 불리는 먹는약(젤로다)+주사(옥살리플라틴) 조합이고, 나 역시 어김없이 이 치료법을 받게 되었다. 이 치료법을 시작하면 3주에 1회차 치료를 받게 되는데, 각 회사에는 옥살리플라틴 주사를 1회 맞고, 2주간 젤로다 라는 약을 하루 2회(아침,저녁)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정해준 용량을 먹은 후, 1주간 휴약기간을 가진다. 이 때, 혹시나 약 먹는 것을 잊거나 다른 이유로 먹지 못 하더라도, 남은 약은 폐기하고 1주간의 휴약기간은 반드시 지키도록 안내 받는다. 항암치료 첫 날. 옥살리플라틴 주사를 맞기 한 날이다. 정맥주사로 약 한시간 반정도 맞으면 된다고 사전에 설명들었지만, 항암 주사를 처음 맞을 때는 몸에 특별한 부작용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좀 더 천천히 놓아준다. 한 시간 정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 이후 부터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찌릿찌릿 하여 나중에는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듯한 감촉을 느껴 통증이 상당했다. 윽...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내가 경험했던 옥살리플라틴의 대표적인 첫 번째 부작용은 저림 증상... 피부가 살짝 쓸리기만 해도, 통증이 상당하기 때문에 옷 입고 벗기도 두렵고, 누군가 옆에서 건드릴까봐 가까이 오는 것도 무섭다. 이 증상은 3~5일정도가 제일 심하고 나머지 기간동안에는 좀 버틸만 했다.(다시 맞기 까지..) 그리고 두 번째 부작용은, 울렁거림이었다. 항암 치료를 무사히 잘 받으려면 영양분 섭취, 특히 단백질 섭취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 울렁거림 때문에 ...

암 체험기 #5 - 안녕, 위장아. 그동안 수고했어. (위전절제술과 회복기)

  눈을 떳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커다란 방이었다. 이 곳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누워있었다. 나 처럼 수술을 막 마친 환자들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안정을 찾을 때까지 집중 관리하는 곳인 듯 했다. 방 여기저기에서 띠, 띠 하는 기계음과 막 마취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신음소리,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들의 발소리과 말소리들이 들렸다. 나는 아직 몸이 마취에서 덜 풀렸는지 통증이 있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반 쯤은 꿈에 가있고, 나머지 반은 현실에 와있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간호사가 뭐라뭐라 하는데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였던 나는 주변에서 뭐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대로 누워있다보니 얼마 후에 침대 채로 옮겨졌다. 도착한 곳은 병실이었고, 병실에는 눈물자국 있는 아내가 운 듯한,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실 침대로 옮겨진 내 손에는 통증이 심할 때 누르라고 한 빨간 버튼이 하나 쥐어져 있었고, 나는 그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시 헤롱헤롱 해지는 기분 때문에 잠들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자다보면 깨워서 체온, 혈압을 재고. 전신마취한 후에 폐를 펴야 한다고 숨을 들이키는 훈련하는 장난감 같은 거 불고. 통증에 약 맞고 다시 잠에 들다 보니,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는 시간이 긴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수술 할 때, 배를 갈라서 위를 빼냈다던데... 문득 내 배의 상태가 궁금해져서 수술 부위를 보니, 배꼽 아래부터 명치 정도까지 일자로 죽 드레싱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른 배를 다시 기워놓은건지 찝어놓은건지, 붙여놓은 거 같은데 이대로 그냥 놔둬서 알아서 아물게 될 거라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배 내부에서 생기는 피나 고름 같은 것을 빼내기 위해, 수술 부위와는 별도로 관이 하나 밖으로 나와서 봉투에 붉기도 하고 노랗기도 한 액체가 조금씩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막 나올때는 소변줄도 달고 나왔었는데, 이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