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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집 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어째서 그대 보다 강한 방법으로 이 잔학한 폭군인 시간 공격하지 않는가? 어째서 내 불임의 시보다 복된 수단으로 파멸에 처한 자신을 요새처럼 보호하지 않는가? 이제 그대 행복한 시간의 정상에 서 있고 채 가꾸지 않은 지천의 순결한 정원들은 그대 살아 있는 꽃들 심기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대 초상화보다 더 그대 같은 꽃들. 시간의 붓도 내 이 서툰 펜도 그대의 가치 있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양 사람들 눈에 그대답게 생생히 그려 낼 수 없지만, 자식은 그대 그 모습 소생시키리.   그대 내어 주는 것이 그대 영생 가져오는 것.   그대 달콤한 재주로 그려 낸 대로 그대 살게 되리. - 소네트집 1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번역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죽음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였다는 흔적은 나와 그녀가 만나서 사랑하였다는 기록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걸까?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흔적을 지닌 세 명의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눈,코,입... 마음까지 나누어 지니고 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하였던 아내의 어린시절을 간접적으로 나마 보기위해 그렇게 원했던 딸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아들들은 아내의 부분 부분까지 전부 나누어 가지고 있다. 아...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 속에서 남아 있을 수 있겠지. 우리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노 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여서 두 길을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서서 한 길이 덤불 사이로 굽어지는 곳까지 멀리, 저 멀리까지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길로 나아갔습니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더 나은 길처럼 보였습니다. 풀이 무성하고 닳지 않은 길이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두 길은 똑같이 닳을 것입니다. 까맣게 디딘 자국 하나 없는 낙엽 아래로 두 길은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아, 다른 길은 후일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길이란 길과 이어져 있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죠. 까마득한 예전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로 나아갔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이민정, 장원 역 살다보면 내 인생을 결정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가만히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다보면 지금 이러한 마지막이 오지 않을 수 있을 만한 선택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 멀쩡한 회사에서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잘 받고 암이 생겼더라도 사전에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꼭 그 때가 아니더라도 나와서 사업을 하다가 몸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그 때 영양제나 위장약을 떼울게 아니라 제대로 검사를 받았다면 좀 더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첫 번째 암이 재발했던 때에 주치의가 시키는 대로 할 게 아니라 그 시기 가장 효과적이라고 조사했던 그 약을 처방해주던 그 병원에 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전부 가정일 뿐이고 실제로 그 길을 선택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내 꿈을 위해 다 던지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봤던 것에는 어떠한 후회도 없다. 아마... 다시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래도...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가끔씩 생각하고, 궁금해진다...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 헨리 밴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헨리 밴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우리 얼굴은 시원한 빗줄기를 한 번 더 느끼기를 원할 겁니다. 세상에 늘 음악 소리만 들린다면 우리 마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사이사이 달콤한 침묵이 흐르기를 갈망할 겁니다. 삶이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면 우리 영혼은 차라리 슬픔의 고요한 품 속 허탈한 웃음에서 휴식을 찾을 겁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하고싶은대로 하고싶은 것 하면서 마음껏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흔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특별히 이르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않았다. 그저 여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기다릴 뿐 평온하고 쉬운 길 보다는 어렵고 도전적인 선택을 하여 그 험난함과 성취감을 즐기느라 치열한 삶을 살아왔기에 비명횡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도록 평온한 슬픔의 시간을 마련해 준 암이 조금은 고맙기도 하다.

[책갈피] 연금술 - 새러 티즈데일

  봄이 빗속에 노란 데이지꽃 들어 올리듯 나도 내 마음 들어 건배합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빗물을 방울방울 물들이는 꽃과 잎에서 나는 배울 테니까요.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법을. - 새러 티즈데일, "연금술", 다시 봄, 장영희 ---------------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연금술처럼 찬란한 금빛으로 만들어 줄 노란 데이지꽃 같은 마음의 잔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한 마음의 잔이 나의 고통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도 담아 보듬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행복이 가득한 잔을 들고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축복하며 건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책갈피] 가을 어느 날 - 김종해

 가을 어느 날 유모차를 타고 마트에 갔어 엄마가 천천히 미는 유모차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마트 가는 길 가을 햇살이 짜증나 세상에 처음 나왔다가 길거리에 떨어지는 나뭇잎 나뭇잎이 불쌍하다 나는 엄마가 천천히 미는 유모차 안에서 막 소리쳐 우는 거야 내가 소리쳐 우는 이유를 아무도 몰라 아가야, 왜, 아가야, 왜 유모차 지붕 위로 커다란 나뭇잎이 또 한장 떨어졌어 - 김종해, '모두 허공이야' 에서 김종해 시인의 '모두 허공이야' 시집은 첫 장부터 시인의 연륜이 가득 묻어있다. 삶의 대한 시각. 다가오는 죽음. 동네 평상 혹은 정자에 앉아, 초연히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노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시들이 하나하나씩 늘어놓아져 있다. 그런... 조금은 어둡고 메마른 분위기 중간에 놓여있는 이 '가을 어느 날' 이라는 시를 읽고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김종해 시인과 따뜻한 정종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할 기회가 있다면 이 시와 같은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내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 지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 경청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 해 본다.

[책갈피] 암세포와의 거래

  내가 지난 밤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말이야 듣고 보니 암세포가 태생적으로 악하진 않더라 그냥 살 곳을 찾는 거였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자기애들을 데리고. 그걸 뭐라고 하겠어 근데 난 괜찮지 않다고 했지 지금은 내가 내 몸을 쓰니까 이사 오면 안 된다고 그래서 암세포랑 거래했어. 내 췌장의 작은 구석에서 암세포를 살게 해주고 나머지는 내가 가지는 거지. - 삼체 시즌1 3화에서 암과의 동거를 인지한지 어느새 1년 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몸 어느 한구석에 그들을 살게 허락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없애지 못할 바에야. 다만, 약속은 필요하겠지. 너무 몸집을 키우지 말아줬으면 해. 너의 비대해진 몸집이, 내 몸 유지를 위한 양분 공급을 방해하거든. 식구를 너무 늘리지 말아줘. 한 없이 늘어나는 너의 가족들을 모두 키우다간, 내 몸이 무너지고 말거야. 같이 오래오래 잘 살 수 있도록. 너도 너의 집과 가족들을 잃는 건 싫잖아?

[책갈피] 별 부스러기

  그거 알아?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결국 아주 오래 전 우주 어딘가에 있던 별에서 만들어 거래.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별 부스러기 라고도 할 수 있는게 아닐까?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책갈피] 나태주 - 놓아라

  놓아라 우선 네 손에 쥐고 있는 것부터 놓아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놓고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놓아라 내친김에 네가 생각하는 것을 놓아라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놓아라 그 위에 너 자신을 놓아라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다.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나태주 -----------------------------------------------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놓지 못한 것들이 많다.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자 했던 것. 이루어야 하는 것. 그 말을 믿으면, 남은 기간 동안에는 이룰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이제 놓아야 할 것들은 놓고, 현실 적인 것들을 보며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수십여년간 쥐고 있던 것들을 놓으면 비로소 편안해 지는 걸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새끼 손가락에 감겨져 있는 가는 실을 위태위태 하게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