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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6년 2월 6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3일, <사랑. 욕구. 자조.>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더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어제와 상태가 비슷했다. 내일은 내내 집에 혼자 있어야하는데 괜찮으려나? 아니면 어쩌겠나. 그냥 버텨야지. 불현듯 아내를 강하게 품에 품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앞의 즐거움과 막연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미래에 있을거라 당연히 생각했던 그 때처럼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니 몸이 살짝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내 꼴이... 과연 이제 가능은 한걸까? 라는 의구심이 조금이나마 달아올란던 몸을 순식간에 식게 만든다. 장루주머니는 괜찮을까? 후유증이 더 겪해지지는 않을까? 아내의 몸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시작은 할 수 있는 걸까? 내 삐쩍마르고, 여기저기 기워진 몸을 보고 사랑이 아닌 연민의 감정만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고 자조섞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일기] 2026년 2월 5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2일

  속이 계속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다. 1회차 때 맞은 경험에 의하면,  이 울렁거림은 최소한 내일까지는 지속되겠지.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이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가장 좋지만 배가 고프면 속이 더 울렁거려 잠도 제대로 자기가 힘들다. 그러다 늘 자던 시간이 아닌 시간에 잠들게 되면 또 이상한 시간대에 일어나 무언가를 챙겨먹어야 한다. 오늘도 후유증 때문인지, 깨어있는 것 자체로도 몸이 피곤해 점심 쯤에 낮잠을 한두시간 잤는데도 오후 8시가 되지 또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새벽 1시에 일어나 다시 잠 들지 못하고 피곤해서 미뤄뒀던 일기를 이렇게 쓰다가 아침 6시에나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오전 10시에 일어나고... 이렇게 생활패턴이 망가지는 것은 역시 컨디션을 더 안좋게 만드는 큰 요인인 듯 하다.

[일기] 2026년 2월 4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1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싱크대에 대고 구역질을 신나게 했다. 공복 상태를 견디지 못 했던 모양이다. 구역질을 하고 속이 아직 울렁거리지만, 빨리 뭔가를 먹지 않으면 이 증상이 더 심해질거 같아 억지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꾸역꾸역 밀어 넣듯이, 꼭꼭 십어 목구멍에 힘겹게 넘겼다. 저잔사식을 먹어야 하는 내게 미역은 좋지 않지만, 국물은 괜찮겠지. 지금 내게는 일단 내 입맛에 맞추어 목구멍에 넘길 수 있는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따지는건 그 다음 문제야. 어제는 그래도 울렁거림은 좀 덜하더니, 항암 전에 맞은 부작용 방지 주사의 효과가 끝나니 바로 이 지경인가 보다. 오늘은 내내 울렁거림과 싸우는 하루가 되었다. 앞으로 못해도 이틀은 더 고생해야겠지?

[일기] 2026년 2월 3일 - 이리노테칸 항암제 2회차 투여

이리노테칸을 두 번째 맞는 날이다. 진료 시에 지난 부작용의 내용을 이야기 했더니 부작용 방지 약이 좀 바뀌었는지 첫 번째 맞을 때 심했던 복통과 울렁거림이 거의 다 사라졌다. 다만, 맞은지 6시간 정도가 지나자 배가 땡기는 증상이 심해지는게 속이 비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걸 먹어야 좀 나아질까 하고 연두부, 미역국, 계란감자 샐러드를 조금씩 시도해보다가 실패하고 참마단호박차를 마시면서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공복 상태가 되면 배가 땡기는 증상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공복이 되기 전에 무언가 꾸준히 먹어서, 사전에 방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위도 없고 장 수술도 두번이나 하고나서는 무언가를 많이 먹어 속을 든든하게 만드는게 안돼서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하는게 좀 곤혹스럽다. 이게...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 먹는데 소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본래 그나마 먹는 것을 많이 좋아하던 사람이라 이렇게 버티고 있지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가 내게 이렇게 고통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일기] 2026년 1월 26일 - 이렇게 상태가 좋은 날엔 의사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다.

  몸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수술했던 것도 회복이 잘 되고 있고, 첫 이리노테칸의 후유증도 완전히 없어진 듯 하다. 이렇게 몸이 가뿐한 날이 있을 때마다 여명이 수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외면한 좋은 기분은 딱, 거울을 보기 전까지 유지된다. 삐쩍 마른 그리고 하루하루 더 말라가는 내 몸을 보면 언젠가는 끝이 오겠구나 하는, 수긍하는 마음이 생긴다. 난 늘... 궁금한게 많았다. 마치 그 답을 찾는게 나의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궁금한게 많다. 오늘 밤엔 나의 아이들에게 오래오래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예쁜 시계를 하나씩 골라봐야겠다.

[일기] 2026년 1월 20일 - 이리노테칸 항암제와 첫 만남과 연명의료행위 중단 서명

  이리노테칸. 세 번째 항암제와의 첫 만남의 날이다. 실패한 첫 항암제와 두 번째 항암제 때와는 다르게, 항암치료를 받는 공간도 침상에서 리클라이너 의자로 바뀌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약은 침상에서 맞고, 어떤 약은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맞도록 정한 걸까? 내가 느낀 차이는 진료 당일에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진료 다음 날부터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밖에 없다. 이리노테칸은 진료 당일에 바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음 날, 병원에 또 와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정말 좋다. 병원에 오려면 왕복 3~4시간을 써야하니... 항암주사를 맞다가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배가 엄청 아팠다. 이 약은 부작용이 복통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통증에 즉효가 있는 강한 진통제를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닌 덕분에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온 몸이 벌써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 항암제도 항암제마다 반응이 가지 각색이구나. 통증이 좀 가라앉으니 얼마 후 부터는 이제 울렁거림이 찾아온다. 울렁거림 방지용으로 처방 받은 약이 세 가지 있는데 덱사메타손, 가스터 이 두 약은 먹으나 마나 하듯 전혀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지고 그나마 맥페란에는 좀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울렁거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프로폴리스 사탕에 효과를 크게 봤다.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동안에는 맥페란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 오늘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연명의료행위 중단 서명을 했다. 말기 암 환자가 되면 권한다고 하던데... 의사의 말로는 암 환자의 경우 연명의료행위로 인해 고통만 길어지는 것이 대다수 이기 때문에 서명해 놓는게 좋다고 한다. 안 그래도, 나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리 써놓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눈치보느라 쓰지 못하고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작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가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기에 스스로의 몸과 목숨조차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