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일기인 게시물 표시

[일기] 2026년 2월 6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3일, <사랑. 욕구. 자조.>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더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어제와 상태가 비슷했다. 내일은 내내 집에 혼자 있어야하는데 괜찮으려나? 아니면 어쩌겠나. 그냥 버텨야지. 불현듯 아내를 강하게 품에 품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앞의 즐거움과 막연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미래에 있을거라 당연히 생각했던 그 때처럼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니 몸이 살짝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내 꼴이... 과연 이제 가능은 한걸까? 라는 의구심이 조금이나마 달아올란던 몸을 순식간에 식게 만든다. 장루주머니는 괜찮을까? 후유증이 더 겪해지지는 않을까? 아내의 몸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시작은 할 수 있는 걸까? 내 삐쩍마르고, 여기저기 기워진 몸을 보고 사랑이 아닌 연민의 감정만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고 자조섞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일기] 2026년 2월 4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1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싱크대에 대고 구역질을 신나게 했다. 공복 상태를 견디지 못 했던 모양이다. 구역질을 하고 속이 아직 울렁거리지만, 빨리 뭔가를 먹지 않으면 이 증상이 더 심해질거 같아 억지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꾸역꾸역 밀어 넣듯이, 꼭꼭 십어 목구멍에 힘겹게 넘겼다. 저잔사식을 먹어야 하는 내게 미역은 좋지 않지만, 국물은 괜찮겠지. 지금 내게는 일단 내 입맛에 맞추어 목구멍에 넘길 수 있는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따지는건 그 다음 문제야. 어제는 그래도 울렁거림은 좀 덜하더니, 항암 전에 맞은 부작용 방지 주사의 효과가 끝나니 바로 이 지경인가 보다. 오늘은 내내 울렁거림과 싸우는 하루가 되었다. 앞으로 못해도 이틀은 더 고생해야겠지?

[일기] 2026년 2월 3일 - 이리노테칸 항암제 2회차 투여

이리노테칸을 두 번째 맞는 날이다. 진료 시에 지난 부작용의 내용을 이야기 했더니 부작용 방지 약이 좀 바뀌었는지 첫 번째 맞을 때 심했던 복통과 울렁거림이 거의 다 사라졌다. 다만, 맞은지 6시간 정도가 지나자 배가 땡기는 증상이 심해지는게 속이 비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걸 먹어야 좀 나아질까 하고 연두부, 미역국, 계란감자 샐러드를 조금씩 시도해보다가 실패하고 참마단호박차를 마시면서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공복 상태가 되면 배가 땡기는 증상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공복이 되기 전에 무언가 꾸준히 먹어서, 사전에 방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위도 없고 장 수술도 두번이나 하고나서는 무언가를 많이 먹어 속을 든든하게 만드는게 안돼서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하는게 좀 곤혹스럽다. 이게...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 먹는데 소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본래 그나마 먹는 것을 많이 좋아하던 사람이라 이렇게 버티고 있지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가 내게 이렇게 고통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일기] 2026년 2월 1일 - 계속 떨어지는 몸무게. 그리고 그들과의 괴리감.

  60kg을 마지노선으로 겨우겨우 지키고 있던 몸무게의 앞자리가 5자로 변했다. 샤워를 하고 벗은 내 몸을 보니 뼈다귀도 이런 뼈다귀가 없을 정도로 느껴졌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19일. 컨디션 자체는 괜찮지만 몸무게가 계속 내려가서 조만간 문제가 생길거 같은 느낌이다. 몸무게가 빠지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 문제도 없는데... 이대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며 창밖 공원에 웃고 운동하는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대학교 때 동아리 후배들이 단체로 찾아왔다. 나에 대한 소식이 여기까지 전달됐구나... 그래도 건강이 안좋다 하니 그렇게 우루루 몰려와 주고 고맙기는 하다. 다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어서 좋아 보였다. 몇 년만에 다시 모여서 20대 초중반의 그 때처럼 웃으며 근황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당장 1년 후를 기대하기 힘든 나와 끝에 대한 생각이나 고려없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사소한 걱정을 하고 있는 후배의 모습 간에 적지 않은 괴리감이 느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틈에 끼어 똑같이 시덥지 않은 농담따먹기 하던 날이 있었는데...

[일기] 2026년 1월 29일 -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게 지금 내게 독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오늘 첫 째 아이에게 화를 심하게 냈다. 아직도 자기 앞가림 못하고, 해야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이 왜 이리 화가 나는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삶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 지내게 되는 걸까? 엄마 홀로 남으면, 이제 아이들에 지금처럼 신경써주는 것도 불가능 할텐데... 지금 이렇게 화를 내면, 내게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후회가 되면서도, 그렇다고 동일한 상황에 다시 맞닥뜨리면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을지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이제부터 내 건강과 좋은 아빠로서의 이미지 관리만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교육 부분은 포기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되겠다마는 이 상황이 되어서도 부모 욕심에 쉽게 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잠들기 전 아이에게, 원인이야 어찌됐든 아빠가 화를 과하게 낸 것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이틀간 학생의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시간을 약속했다. 솔직히 아이들을 신경쓰는 시간이 없다면, 나도 그만큼, 쓸데없는 스트레스 없이 쉴 수 있어서 좋은데... 덕분에 나도 앞으로 이틀은 맘편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일기] 2026년 1월 26일 - 이렇게 상태가 좋은 날엔 의사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다.

  몸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수술했던 것도 회복이 잘 되고 있고, 첫 이리노테칸의 후유증도 완전히 없어진 듯 하다. 이렇게 몸이 가뿐한 날이 있을 때마다 여명이 수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외면한 좋은 기분은 딱, 거울을 보기 전까지 유지된다. 삐쩍 마른 그리고 하루하루 더 말라가는 내 몸을 보면 언젠가는 끝이 오겠구나 하는, 수긍하는 마음이 생긴다. 난 늘... 궁금한게 많았다. 마치 그 답을 찾는게 나의 삶의 원동력인 것처럼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궁금한게 많다. 오늘 밤엔 나의 아이들에게 오래오래 아빠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예쁜 시계를 하나씩 골라봐야겠다.

[일기] 2026년 1월 24일 - 퇴원하고 11일 후. 항암치료 받고 4일 후.

  어제는 아직 항암 치료 후의 부작용이 남아 있어 조금 힘든 상태였지만, 친구들의 병문안을 허락 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 입원 해 있는 동안 오겠다는 것을, 줄곧 퇴원 후에 보자고 방문을 거절 했던 탓이다. 세 번의 수술을 거치고, 몸무게는 60까지 떨어져 형편없어진 몰골을 지인들에게 공개해야 할 시기 였다. 하지만, 꺼려졌던 마음은 딱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였고 막상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니 항암 부작용에 찌들어 있던 몸과 정신이 치유가 된 듯 이야기 하는 그 시간 만큼은 예전의 건강한 내 모습이었다. 한 잔 하며 이야기 못 하는게 너무 아쉬울 정도 였다. 친구들은 40년 인생의 30년 지기 답게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늦어지자 그대로 내 집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각자의 일상으로 떠났고 이번에도 역시나 자신의 흔적들을 하나씩 놓고갔다. 하아... 또 택배로 부쳐줘야겠네... 항암치료를 받은지 4일 째가 되니 확실히 울렁거림이 거의 다 사라졌다. 앞으로 2주마다 또 이 구역감을 사나흘 견뎌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치는 것 같다. 수술을 한지 어느새 11일이나 지났지만 아직 진통제를 꾸준히 먹지 않으면, 통증이 있어 컨디션이 나빠진다. 언제까지 이 약들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걸까? 울트라셋, 라시도필, 노자임.  하... 이 약들의 크기는 왜 또 이렇게 큰지... 넘기기 힘들어.

[일기] 2026년 1월 20일 - 이리노테칸 항암제와 첫 만남과 연명의료행위 중단 서명

  이리노테칸. 세 번째 항암제와의 첫 만남의 날이다. 실패한 첫 항암제와 두 번째 항암제 때와는 다르게, 항암치료를 받는 공간도 침상에서 리클라이너 의자로 바뀌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약은 침상에서 맞고, 어떤 약은 리클라이너 의자에서 맞도록 정한 걸까? 내가 느낀 차이는 진료 당일에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진료 다음 날부터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밖에 없다. 이리노테칸은 진료 당일에 바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음 날, 병원에 또 와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정말 좋다. 병원에 오려면 왕복 3~4시간을 써야하니... 항암주사를 맞다가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배가 엄청 아팠다. 이 약은 부작용이 복통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통증에 즉효가 있는 강한 진통제를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닌 덕분에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온 몸이 벌써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 항암제도 항암제마다 반응이 가지 각색이구나. 통증이 좀 가라앉으니 얼마 후 부터는 이제 울렁거림이 찾아온다. 울렁거림 방지용으로 처방 받은 약이 세 가지 있는데 덱사메타손, 가스터 이 두 약은 먹으나 마나 하듯 전혀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지고 그나마 맥페란에는 좀 진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울렁거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프로폴리스 사탕에 효과를 크게 봤다.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동안에는 맥페란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다. 오늘 항암치료를 받기 전에, 연명의료행위 중단 서명을 했다. 말기 암 환자가 되면 권한다고 하던데... 의사의 말로는 암 환자의 경우 연명의료행위로 인해 고통만 길어지는 것이 대다수 이기 때문에 서명해 놓는게 좋다고 한다. 안 그래도, 나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리 써놓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눈치보느라 쓰지 못하고 있던 것을 자연스럽게 작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가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기에 스스로의 몸과 목숨조차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일기] 2026년 1월 19일 - 장애인 등록 1차 시도

  주민 센터에 장애인 등록을 하러 갔다. 장애인 등록이 되면, 각종 요금이라던지, 세금이라던지, 기타 지원 등의 혜택이 있다던데... 지금 집에서 이렇게 돈새는 구멍으로 멍하니 있기보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미리 알아보고, 여러번 가지 않도록 단단히 서류를 준비하여 갔다. 그런데 역시 이런 복잡한 서류 준비는 꼭 한 번에 되는 법이 없다. 서류가 잘 못 되었다는 공무원에게 수 주일이 더 걸리는 그 방법 말고, 좀 더 간단히 처리할 방법은 없을 지 물어보며 내 사정을 설명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행정은 역시 행정인지라 결국 아무 소득없이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뭐...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다시 서류를 준비하는데 2~3주. 심사 시작해서 결정하는 데 2~3달. 등록 되는 거 기다리다가 죽는 경우도 생길 수 있겠구나... 지금 이게 의미는 있는건가?

[일기] 2026년 1월 18일 - 조급함. 의심, 망설임, 좌절 그리고 두려움.

  이제는 못하는 무언가가 생길 때마다, 조급함을 느낀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지금 의미있는 행동인지 의심하게 된다. 일년 이상 걸릴 것 같은 일은 시도하기 꺼려지고,  일말의 기대를 가지는 것 조차 망설여 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장 사고 싶은 물건 조차 마음 편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물건이 그리 비싸지도 않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좌절 시킨다. 예전에는 시간이 해결 해 줄 것이라고 맘편히 넘어가고 기다리던 것도 이제는 단순히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 여겨진다. 더 살아가는 것에도 의문을 품는 날이 올까 두렵다. 

[일기] 2026년 1월 16일 - 내 신체에 하나씩 늘어나는 의료기구 들과 함께, 변해가는 내 몸

  작년 9월 말에 두 번재 수술이 끝나고 남은 건, 복강경 수술 자국 뿐 만이 아니었다. 오른 팔에 달고나온 PICC (말초삽입중심정맥관)가 내 몸에 부착된 첫 번째 전리품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수술을 마치고 받은 새로운 전리품이 있다. 장루와 장루주머니. 음... 그러니까, 오른팔에는 관을 뚫어서 심장근처의 굵은 정맥까지 연결 시켜놓고, 아랫배 쪽에도 구멍을 뚫어서 장이 배 밖으로 나오게 노출 시켜 놓은 상태라는 소리이다. 90kg가 넘던 건장한 몸이었던, 나는 지금 몸무게 60kg 을 사수하는 것도 버겁다. 집에 돌아와 어느정도 일상생활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장비 때문에, 가벼운 운동도 신경써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게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 이 상황을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지금의 나의 존재는 가족에게 정신적으로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일까? 그냥 짐일 뿐일까? 나만 놓고 생각하면 이 생이 당장 끝난다해도 크게 미련이 없지만 아내와 아이들. 특히 나 없이 혼자 살아갈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미련이 생기려고 한다. 미련... 후회... 걱정... 기대... 그리고 미안함.

[일기] 2026년 1월 13일 - 험난한 여정의 쉼표. 세 번째 수술 후 퇴원은 달콤하고도 두렵다.

  세 번째 입원은 생각보다 길었다. 솔직히 세 번째 입원하기 전까지 이 병원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입원시켜 주는 경우도 있었구나 새삼 감탄할 정도였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냐면... 25년 12월 16일 - 설사와 구토. 장염, 장폐색으로 인한 식사 불가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행. - 입원 가능한 병실이 없어, 검단탑병원(로컬 2차병원)으로 전원조치하여 입원. 25년 12월 22일 - 일주일 간 입원치료 후, 상태가 약간 호전되어 퇴원. 25년 12월 24일 - 아산병원 주치의 외래 진료 받으며, 현재 상태을 말했으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지 좀 더 지켜보기로 함. 25년 12월 26일 - 갈색 구토. 장염. 장폐색 증상이 다시 심해져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2번째 행 - 증상이 더 악화되기도 했고, 주치의도 아산병원에 입원시켜 봤으면 하는 의견이지만, 병실이 없다고 함. - 응급실 규정상 24시간 내에 입원되지 못하면 다시 전원조치 할 수밖에 없다고 함. - 다음 날 자리가 나길 빌며 응급실에서 응급조치 받으며 대기. 25년 12월 27일 - VIP 병실 외에는 빈 자리가 없다고 함.  - VIP 병실은 1박에 병실료만 120만원 정도 된다하고, 입원하면 5일 내로 다른 병실로 옮길 수 있을지 확답 불가능하다고 함. - VIP 병실 입원은 거부하고, 24시간이 지나 힘찬병원(로컬 2차병원)으로 전원조치하여 입원 됨. 25년 12월 29일 - 힘찬병원에 입원하여 조치 받았지만, 상태가 점점 더 악화 됨. - 입원 기간 동안 매일 39도 내외의 열, 갈색 구토, 설사 증상에 시달림. - 체내 염증 수치가 잡히지 않고 매일 같이 올라, 힘찬병원에서 다시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 볼 것을 권함. 25년 12월 30일 - 3번째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행. - 여전히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없다고 함. - 이번에는 주치의도 다시 전원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병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응급실에서 대기 하면서, 치료를 진행해 ...

[일기] 2026년 1월 12일 - 암 말기환자의 수순

  문득 생각했다. 이제 더 좋게 치료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지금 이 정도 수준에서 더 악화되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되도 몇 년이고 더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 것같은데. 어찌하여, 지금은 현상유지 조차 못 하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만 하는지... 회진에서 내일 퇴원을 권하고, 다음 주 화요일 부터 항암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가능할 때, 하루라도 더 일상생활을 지내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전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의향서를 작성할 것 또한 권했다. 연명 치료라는 것은 어느 정도 몸의 상태를 되돌려서 더 좋아질 가망성이 있는 경우에 의미가 있는데, 암 환자의 경우에는, 몸의 상태를 조금 되돌린다고 하여, 더 나아질 가망성이 거의 없고, 오히려 환자가 고통 받는 시간만 늘리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안 그래도 내심 미리 작성하고 싶었지만,  이 걸 작성하고 싶다고 내 스스로가 말한다는게, 내 앞으로의 삶을 포기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아내에게 차마 말 못하고 있었는데, 의사가 미리 이야기 해주니 오히려 이야기 꺼내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의향서 작성과 관련하여 담당 간호사와 상담예약 일정이 잡혔다. 이미 내 마음은 정해져 있지만... 절차를 따르고,  아내의 마음에 최대한 상처를 덜 주기위해, 사인하기 전까지 최대한 말을 아끼기로 다짐하였다.

[일기] 2026년 1월 7일 - 세번째 수술. 그리고 남은 여명은 수 개월

  세 번째 수술이 결정되었다. 몸 컨디션이 많이 좋았졌기 때문에, 수술을 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이번에 수술을 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장루를 한 채로 살아야 한다고 들어서 정말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이된 암이 장을 막고 있어 앞으로 식사를 자력으로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장루 수술을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제 죽을때까지 똥 주머니를 차고 다니겠구나... 3차 항암은 이리노테칸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항암치료가 3차까지 넘어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남은 여명이 수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 인생게임의 엔딩이 이제 슬슬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게임을 할 때 엔딩이 가까어지면 끝에 대한 기대감으로 끝날 때까지 멈추지 못했었는데, 내 인생에도 이런 기대감이 동일하게 적용이 되서, 마지막을 빠르게 달리게 될까? 이렇게 맞이하는 엔딩이 해피 엔딩일리가 없는데... 아니다. 그냥 머리를 비우는게 좋겠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내일 죽더라도 오늘의 난 평소와 같은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결과야 어찌됐든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않길 기도할 뿐이다. 와인 한 잔이 너무 마시고 싶은 날이다. 좋은 이유에서든, 좋지 않은 이유에서든 항암을 이제 그만해도 되는 날이 오면 향이 가슴에 새겨질만큼 좋은 와인을... 단 한 잔만이라도 꼭 마셔야겠다. "치료되는 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와인 한 잔 마시는 건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일기] 2026년 1월 2일 - 나는 수명이 다해가는 기계처럼 하루하루 망가져간다.

2026년 1월 2일 오전 8시 회진 시간에 주치의가 왔다. 주치의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나름 여러가지 고민을 했는지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내용을 평소처럼 빠르게 쏟아냈다. (중간에 궁금한 점이 생겨도 이 특성 때문에 쉽게 질문을 하기 힘들다) 염증 수치는 다행이 잘 떨어지고 있지만, 현재 소장의 대부분 많이 부어있는 상태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질 못하니, 다음 주 화요일에 CT를 다시 한 번 찍어보고, 장루를 다는 수술을 한 후에,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고. 항암치료는 약을 변경해서 다시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예전에 장루는 한번 달면 아마 죽을 때까지 달아야 할 것이다. 라고 들은 기억이 있어서 혹시 하고 물어봤더니 역시나 였다. 역시나... 의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하아.. 하고 한숨을 쉬고 나니 오른쪽 눈에 눈물이 한방울 맺혔다. 옆에 와이프가 앉아있기에 티 안나게 살짝 닦고 쓸데 없이 우는 거 같은 모습 보이기 싫어서 더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번엔 왼쪽 눈에 눈물이 주루룩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별로... 스스로도 그렇게까지 뭐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거지.. 아내도 왜 우냐고 묻고 있고...  화장실에 들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음껏 흐르려는 눈물을 막아보려 세수를 하다보니 지금 내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랬다. 나는 스스로는 수명이 다되어 가는 전자기기와 같이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사용한지 오래되 아무리 충전해도 완충될 수 있는 용량이 조금씩 줄어드는 배터리 같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군데씩 고장나 점점 할 수 있는 기능이 줄어더는 가전제품같이. 이렇게 한군데 한군데 씩 고장나다 보면 오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