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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0일 - 이리노테칸 5회차 투여일, 몸 상태와 상반된 CT결과.

  이리노테칸 5회차 항암일. 동시에 2주 전에 찍은 CT 결과를 듣는 날 이기도 하다. 솔직히 많이 각오한 상황이었다. 식사를 하는 양이 점점 줄어드니, 딱히 검사 결과를 듣지 않아도 아.. 암이 또 자라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밖에... 그런데 놀랍게도 CT 결과는 오히려 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한다. 배 속에 차있던 복수의 양도 많이 줄고, 복막의 두께가 전체적으로 얇아졌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식사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건데? 장우회술을 한 부위에 문제가 생겼나? 그 원인이 암이 아니라면 왠지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암 상태가 더 나빠졌다면, 항암제도 바뀌어야 할 테고... 그럼 다른 시도해 볼 약이 또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 수술을 또 해야 하는 지도 결정을 해야한다. 아... 같은 부위에 수술은 다시 못 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식사는 또 링거로만 맞아야 하던가. 이 많은 생각들을 일단 묻어두었다. 암이 문제가 아니라면... 다음 주에는 식사를 못 하는 원인을 찾기위해 내시경 예약을 했다. 수술한 부위까지 막힌 곳이 있는지 내시경으로 직접 확인 해 본단다.  그래. 암만 원인이 아니라면... 내 수명이 조금은 연장되었다고 생각해도 될지  하늘에 묻고 싶어지는 날이다.

2026년 3월 18일 - 말기암 환자는 눈물이 많아진다.

  요즘들어 눈물 부쩍 많아졌다. TV를 보다가 별것도 아닌데도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핑~ 하고 도는 경우가 잦아졌다 요즘 음식물 넘어가는게 점점 안좋아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사가 말한 서너달의 유예가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일까? 솔직히 서너달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이렇게 멀쩡한걸. 음식도 넘어가는게 조금 힘이 들 뿐이지 못 먹는 것도 아니다. 어제는 김치전과 어묵탕이 잘 들어가서 잔뜩 먹고 몸무게가 500g이나 늘었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앞으로 한두달 안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마 먹는 것 때문에 그렇겠지. 지금처럼 서서히 음식물이 안 넘어가기 시작한다면, 이 속도라면 정말 한달 내에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음식을 못먹어서... 이렇게 평온히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소중한... 내 일상. 이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PEACE...

2026년 3월 16일 - 내 몸의 작은 반응에도 약해지는 말기 암 환자의 마음

  몸의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음식을 넘기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못 먹는 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 무슨 의미일까? 내 복막에 있는 암세포들이 증식해서 또 장을 좁게 만들고 있는 걸까? 이러다 다시 고형물을 못 넘기고, 액체도 못 넘기고 다시 입원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또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까? 또 한 번의 수술. 영원한 입원. 깊은 잠. 죽은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슬슬 내 인생 마지막 와인을  골라놔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이 오더라도 내 집에서 평온히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6년 3월 13일 - 퇴원한지 2달. 좀 더 미래를 꿈 꾸어 보기.

  아내 직장 근처에 주택 부지를 보러 다녔다. 죽기 전에 마당있는 예쁜 집에 살아보고 싶다고, 요즘 틈 날때마다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쪽 동네는 어떤가...  어떠한 집들이 있나... 짓는 다면 어떤 느낌일까... 느껴보기 위해  나들이 삼아 가 보았다. 현실적으로 땅 사고 건물 짓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을 팔아 이사하기 까지 걸릴 시간보다 내가 살아있을 시간이 적은 것은 분명하기에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이미 지어져있는 이쁜 집들을 구경하면서 여기에 집을 짓는다면 하는 가정하에 아내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꿈은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하루에 7천보 이상 걸은게 정말 얼마만인지 실제로 주택이 지어져있는 땅과 집들을 보니 내가 살고 싶은 주택의 모습이 더 선명해지는 듯 했다. 빈 대지가 생각보다 많다. 정말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왜 이전까지는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 내가 죽기 전에 정말 주택에 살아 볼 수 있을까?

2026년 3월 9일 - 이리노테칸 4회차 투여 + 3일, 항암 부작용 증상이 사라졌다.

  항암하고 3일이 지났다. 원래는 아직 항암 부작용 증상에 한참 시달려야 할 때인데 울렁거림이 벌써 없어졌다. 부작용 방지제를 꾸준히 잘 먹었기 때문일까? 아직 혀는 정상으로 안 돌아와서 입맛은 좀 이상하다. 그래도 맵고 짠 음식은 맛이 잘 느껴지는 편이라 자극적인 걸 먹으면, 먹을만 하다. 야구도 이기고, 아이들도 자기 할 일 잘 하고, 먹는 것도 얹히는 것 없이 잘 먹고, 집안 일에 아이들케어에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만 빼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검색해보니 항암의 부작용이 잘 나타나는게 항암의 약효가 잘 듣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는 연구결과가 있단다. 항암 부작용이 거의 사라진게 항암치료의 효과가 잘 안듣기 시작한건 아닌지 조금... 불안하다.

2026년 3월 7일 - 뭐야? 갑자기 주치의가 바뀐거였어?

  어제는 주치의가 아닌 전문의 진료였다.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루틴한 시기에는 종종 주치의가 아니라 다른 전문의가 대신 진료하는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어제 그 전문의가 했던 말들이 드문드문 떠오르면서, 그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치의가 바뀌었다는 것. 이제부터는 자기가 나를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헐... 이게 왜 이제서야 이해가 됐지? 어제 들었을 때는 그냥 정신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형태로 있었나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듯이, 내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물흐르 듯 지나가버린 이야기라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난 누구한테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주치의가 해외연수를 갔다고? 그래서 1년정도 없을 거라고? 난 지금 여기서 이제 곧 죽네사네 하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거에만 의존하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미리 말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아무한테나 나를 훅 던져놓고 가버리는 거야? 처음 서울아산병원에 그 주치의에게 간 것도 아내가 열심히 여기저기 알아보고 믿을 만한 의사를 찾아서 치료를 의뢰했던 것이엇는데, 지금 바뀐 이 전문의는 그 사람의 비해 연차도 적어보이고... 무엇보다 아산병원의 정규직의사도 아니다. 병원 내에서 무슨 힘이 있을 거며... 어떤 인맥이 존재 할지... 그나마 상담하기에는 그.. 친절도가 전의 주치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친절한게 아니지 않는가? 능력이 어느정도 되느냐는 거잖아? 처음 암 진단을 받을 때부터 시작한 내 이력들과, 그동안 이야기 해 온 사정들. 많고 세세한 이슈들.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계약직 의사에게 나를 인계해 버렸다. 물론 기록이야 있지. A4용지로 뽑으로 수백페이지나 되는 내 기록들이. 이 사람 미어터지는 곳에서 하루에 수십명씩 진료를 보면서, 내 기록 꼼꼼히 챙겨 보겠는지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뭐 일...

2026년 3월 6일 - 이리노테칸 4회차 투여

  이리노테칸 4회차. 이 항암제를 맞으면 장 속에 구렁이 한마리를 키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꿈틀꿈틀. 꿈틀꿈틀. 내 장은 마치 독립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생물인 듯 느리게... 빠르게... 꿈틀꿈틀. 꿈틀꿈틀. 다행히 1회차 때 있었던 심한 복통은, 부작용 방지약이 잘 듣는지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다. 통증없이 그저 저 기분나쁜 꿈틀거림만 남았을 뿐이다. 꿈틀꿈틀. 꿈틀꿈틀. 지난 항암 때는 얘가 언제까지 꿈틀거렸더라? 모르겠다. 어찌됐든 내일 부터는 울렁거림과 싸워야 겠지.

2026년 3월 5일 - 암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음식물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어제 먹은 미역국 탓인가? 하루 내내 가벼운 음식도 넘길 수가 없다. 그나마 저녁 부터는 조금 나아져서,  조금이나마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저잔사식을 먹어야한다는 주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역국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어제의 나를 저주한다.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을 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딘가에서 자라난 암이 또 음식이 지나가는 길을 막을 까봐. 그리고.. 그대로 다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까봐. 그 상황이 되면, 그걸로 끝일까봐. 이제는 안다. 암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 암은 나를 마르게 할 뿐이다. 암 이라는 기생충에 계속 이렇게 빨리다 보면 나는 병걸린 고목나무처럼 말라 가죽만 남게 되겠지.

[일기] 2026년 3월 3일 -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 빠르게 떨어지는 모래시계.

  하루의 일과가 점점 체계가 잡히고 있다. 투병하는 환자의 일상으로부터 내일 세상이 끝나더라도 오늘은 담담히 사과나무를 심는 농부의 모습으로. 나의 시간은 보다 더 의미있게-혹은 바쁘게 채워지고 있다. 시간은 일상을 연료로 하는 열차처럼 채우는대로 가속하여 눈 깜짝할 새 하루의 종착역에 도착한다. 나는 불안해 진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모래시계가 다 떨어질까봐.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열차가 멈추어 버릴까봐. 하루가 지나가는 속도가 현기증나게 느껴질 때마다 조금, 아주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내 열차의 종착역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일기] 2026년 3월 2일 - 쓸데없는 참견. 아직 남은 자존심.

  장모님, 장인어른이 오셨다. 예전에 잘나가는 식당을 하셨던 장모님의 음식 솜씨는 여전했다. 장모님의 음식은 언제나 반갑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청구서처럼 따라오는 장인어른의 걱정어린 조언과 주변 사례는 사양하고 싶다. 동굴같은 울림통을 가지고 계신 장인어른은 작지만 단단한 바위같은 분이다. 만나면 늘 과거에 벼슬을 하신 조상님 부터 시작해서, 병원 원장이었다가 은퇴한 의사 친구를 가진 것에 대한 자랑이나, 교수였던 친구. 자신의 말이라면 꿈뻑 죽는다는 주변 동네 동생들까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저음의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 처럼 끊임없이 하시는 분이다. 듣고 있으면 정신이 멍~ 해지면서, 저주파의 울림에 귀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 한 기분을 느낀다. 한 때, 대기업 다니다가 당당히 나와서 유망한 사업을 하던 사위로, 그의 이야기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나는 이제 장인 어른께는 늘상 걱정받아야 하는... 딸을 고생시키는 못난 사위가 되어 버렸다. 장인어른은 오늘도 만나자마자 위암에 걸렸다가 지금은 20년째 잘 살고 있는 옛날 동창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장인 어른과의 통화에서도 두어번은 더 들은 적 있던 이야기였다. "내 동창이 20년 전 쯤에, 위암으로 수술 받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통 사람이랑 똑같이 밥먹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물먹을 때만 좀 얹힌다고 하대~"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병원 원장이었던 의사친구가 한 이야기나 어떤 버섯이나 약재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쭈~욱 늘어놓으셨다. 아.. 네~ 그렇네요. 그래야겠어요. 하며 영혼없이 적당히 맞장구 치며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넘기고 있었지만, 장인어른은 듣는 사람의 태도 따윈 상관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듣는사람의 반응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본인 할말을 끝까지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장인어른의 강점이다. 지금 우리집에는 우퍼스피커가 달린 라디오가 틀어져있다고 자기최면을 하며, 식후 커피를 다같이 마시고 있는데 장인 어른의 말이 갑자기 내 가슴을 찔렀다...

[일기] 2026년 2월 25일 - 이리노테칸 3회차 투여 +5일. 음식 넘어가는 느낌이 이상해...

역시 항암치료를 받은지 5일쯤 되면 관련된 부작용이 거의다 가라앉는다. 부작용은 거의 없는데 장이 좀 이상하다. 뭘 밀어 넣어도 제대로 소화되는 느낌이 아니다. 그냥 음식물이 장을 스쳐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속이 허한 느낌에 계속 뭔가를 넣어 주기는 하는데 포만감을 느끼지는 못 한다. 떠그락 떠그락. 장 속에서 음식물이 자갈 처럼 굴러다니는 느낌이다. 물을 마시고, 이온 음료를 마셔도 해소되지 않는다. 지나가며 약간의 통증만 일으킬 뿐이다. 그런데, 그런 속에 치킨으로 기름 칠을 하니까   엥..? 갑자기 속이 편해졌다. 막내가 먹고싶다 해서 시킨 치킨 조각이 이런 효과가... 심지어 먹기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속에 뭘 넣어도 아파서 조금씩 밖에 못 먹었는데.. 오랜만에 포만감과 함께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이건 심리적인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생각하지 못한 다른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까?

[일기] 2026년 2월 21일 - 밤 중에 터진 장루주머니, 꾸벅꾸벅.

  새벽 2시에 문득 눈이 떠졌다. 장루 수술을 받을 이후부터 눈을 뜨자마자 장루 주미니를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 장루주머니가 터져있었다. 어제 먹었던 삼계탕이 소화가 너무 잘된 나머지 너무 꾸덕해서 장루 주머니 입구를 막았고 그 압력을 이기 못하고 터진 모양이었다. 장루의 내용물(이라고쓰고 변이라고도 부른다)은 내 배를 덮고 흘러내려 침대에도 고여있었다. 하... 정말 이제 살다살다...ㅠ 이대로 일어나면 내용물을 온 곳에 흩뿌릴 위험이기에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아내에게 SOS 전화를 걸었다. 새벽 중에 일어나 남편의 변 치워야 하는 아내의 마음은 또 어떨지 참담하기 짝이없다. 결국 무사히 뒷수습이 되었지만,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 * 낮에는 아이도 아내도 없이 오랜만에 집에 홀로 있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이 시간에는 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오늘은 항암 치료의 여파 때문인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조금씩 배를 채우고, 멍하니 티비를 보는 것 밖엔... 졸음은 시도때도 없이 몰려와서 쇼파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데 누워서 자려고 하면, 또 그건 안된다. 계속 피로한 느낌 때문에 집중해야 하는 일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먹는 것도 잘 넘어가지 않아 천천히 그냥 살기위해 음식물을 목 뒤로 천천히 삼킨다. 내일은 좀 괜찮아 질까?

[일기] 2026년 2월 19일 - 증가하기 시작하는 몸무게, 음식이 다시 얹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

  설연휴동안 전을 잔뜩 먹어서 그런지  몸무게가 62kg를 넘겼다. 이건 분명 기뻐할 만한 소식인데 갑자기 먹는 것 마다 이제 음식이 얹혀서 먹는 행위가 좀 힘들어졌다. 요 며칠 좀 과하게 먹었다고 지금 내 장이 시위하고 있는 건가? 며칠 전까지 잘 먹었던 음식들이 자꾸 얹히니까 또 어디가 막히기 시작한 것은아닐까 괜히 불안해진다. 이번에 한 번 더 막히는 일이 발생하면 이번에야 말로 병원에서 영영 못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제발... 그런 일 만은 없어야 할 텐데.

[일기] 2026년 2월 18일 - 설날의 전의 효과. 삶에 대한 감사.

설이다. 그래도 올해는 명절을 부모님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2년을 연속으로 추석 시기에 수술을 했을니... 설날의 전의 효과란 그렇게 노력해도 오르지 않던 몸무게를 오르게 한다. 먹어도 막히는 느낌도 없고 주섬주섬 계속 먹어도 물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왜 이리 행복한지... 행복감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 것이 확실하다. 모래 또 항암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그 때까지 잘 먹어봐야지.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고 이렇게 좋은 컨디션으로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자. 윷놀이 하는 가족들 곁에서 그들의 웃음을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하자.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게임을 하며  놀아 줄 수 있는 몸이 됐음에 감사하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나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일기] 2026년 2월 14일 - 퇴원 후 1달. 삶의 의욕이 생기다.

세 번의 수술을 하고 퇴원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요즘은 자도자도 피곤함을 느낀다. 조금만 활동을 하면 졸음이 밀려온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깨어있을 때는 어느정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게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인지 좋지 않은 신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이상하게 삶에 대한 미련이 더 생기는 것 같은게 나쁘지 않은 신호라고 느껴진다. 건강해 보이는 모습으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다시 돈을 모으고 꿈에 그리던 집을 짓고 그 곳에서 살아보았으면 좋겠다. 그 때까지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기] 2026년 2월 11일 - 뒷 일을 부탁해.

그동안 망설이며 미뤄왔던 장문의 메세지를 동생에게 보냈다. 너에게 이런 마음의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못 다한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부탁한다. 그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 만큼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부모님 잘 챙겨드려야한다. 오밤중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우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게 이리 곤혹스러운 일 일줄이야. 몇 시간 후 까만 창 밖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갈 때 쯤 동생이 보낸 장문의 답장에 아침부터 울었다. 이제 곧 아내가 방에 들어올텐데 운 흔적이 있는 얼굴을 보게되면,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텐데...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냥 쏟아지는 울음을 놓아주었다. 피곤하다. 그래도.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오늘 내가 할 수있는 일들을 해야지. 마치 아무일도 없는. 없을. 사람처럼. 그냥 백수라 할 일 없어 심심한 사람처럼.

[일기] 2026년 2월 10일 - 쿠폰 데이. 퀘스트 중독. 베드엔딩은 거부.

  오늘은 몸의 컨디션이 괜찮다. 이런 날은 그동안 이런 날을 위해 미뤄둔 퀘스트를 수행한다. (퀘스트 - 게임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주로 게임 속 인물이 플레이어에게 주는 임무를 뜻 한다.) 쿠폰데이.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최소한의 동선이 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본다. 먼저 버거킹에 들러서 만 원 할인 이벤트를 활용하여 버거세트를 구입한다. 그 다음은 베스킨라빈스에 들러서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KT 멤버십으로 받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파인트를 받고, 아내의 지인이 선물로 보내 준 설빙 기프티콘을 이용해 두바이초콜릿빙수를 교환한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이 되어 있는 이 상점가의 경우에는 약국에서도 10% 할인 효과를 받을 수 있다. 마침 나왔으니, 해열제나 감기약 같은 상비약도 구입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게임할 때도 이러한 퀘스트에 집착한다. 시나리오에 중요한 퀘스트든지, 전혀 상관없는 사소한 퀘스트든지 일단 맡겨지면 해결하는데 집착하고, 할 일 목록이 깨끗히 지워졌을 때 해방감을 즐기곤 한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도 나는 굳이 있는 일, 없는 일을 만들어내서 게임의 퀘스트처럼 정리하여 척척 처리해 내는 것을 즐기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나에게는 실제 삶조차 하나의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셋이 불가능한 하드코어 모드의 게임이다. 그리고 게임이 베드 엔딩이 되지 않기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일기] 2026년 2월 8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5일, 부모님에게는 하지 못 할 이야기.

  이리노테칸을 맞은 지 5일째 되는 날이었지만 아직 울렁거림이 있다. 이번엔 1회차보다 더 길어진 것이, 다음 번에도 이러려나 걱정이다. 항암의 부작용의 강도가 약해져 조금 생각할 여유가 생기니 이제는 슬슬 부모님께 남은 여명에 대해 이야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맨 처음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라는 기간이라는 것에 대해 부모님께도 담담히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단 수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단지 남은 기간의 길이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기간동안 부모님이 걱정하고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봐서 일까. 지금까지는 이런 중대한 일을 부모님께 숨기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 할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이대로 모른 채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지고 계시는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늘 동생에게만이라도 모든 이야기를 하고 혹여 모를 갑작스런 소식에도 부모님을 잘 부탁한다고 장남으로서, 오빠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일기] 2026년 2월 6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3일, <사랑. 욕구. 자조.>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더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어제와 상태가 비슷했다. 내일은 내내 집에 혼자 있어야하는데 괜찮으려나? 아니면 어쩌겠나. 그냥 버텨야지. 불현듯 아내를 강하게 품에 품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눈앞의 즐거움과 막연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미래에 있을거라 당연히 생각했던 그 때처럼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니 몸이 살짝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내 꼴이... 과연 이제 가능은 한걸까? 라는 의구심이 조금이나마 달아올란던 몸을 순식간에 식게 만든다. 장루주머니는 괜찮을까? 후유증이 더 겪해지지는 않을까? 아내의 몸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시작은 할 수 있는 걸까? 내 삐쩍마르고, 여기저기 기워진 몸을 보고 사랑이 아닌 연민의 감정만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보고 자조섞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일기] 2026년 2월 4일 - 이리노테칸 2회차 투여 후 +1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싱크대에 대고 구역질을 신나게 했다. 공복 상태를 견디지 못 했던 모양이다. 구역질을 하고 속이 아직 울렁거리지만, 빨리 뭔가를 먹지 않으면 이 증상이 더 심해질거 같아 억지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꾸역꾸역 밀어 넣듯이, 꼭꼭 십어 목구멍에 힘겹게 넘겼다. 저잔사식을 먹어야 하는 내게 미역은 좋지 않지만, 국물은 괜찮겠지. 지금 내게는 일단 내 입맛에 맞추어 목구멍에 넘길 수 있는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따지는건 그 다음 문제야. 어제는 그래도 울렁거림은 좀 덜하더니, 항암 전에 맞은 부작용 방지 주사의 효과가 끝나니 바로 이 지경인가 보다. 오늘은 내내 울렁거림과 싸우는 하루가 되었다. 앞으로 못해도 이틀은 더 고생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