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장인어른이 오셨다.
예전에 잘나가는 식당을 하셨던 장모님의 음식 솜씨는 여전했다. 장모님의 음식은 언제나 반갑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청구서처럼 따라오는 장인어른의 걱정어린 조언과 주변 사례는 사양하고 싶다.
동굴같은 울림통을 가지고 계신 장인어른은 작지만 단단한 바위같은 분이다. 만나면 늘 과거에 벼슬을 하신 조상님 부터 시작해서, 병원 원장이었다가 은퇴한 의사 친구를 가진 것에 대한 자랑이나, 교수였던 친구. 자신의 말이라면 꿈뻑 죽는다는 주변 동네 동생들까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저음의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 처럼 끊임없이 하시는 분이다.
듣고 있으면 정신이 멍~ 해지면서, 저주파의 울림에 귀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 한 기분을 느낀다. 한 때, 대기업 다니다가 당당히 나와서 유망한 사업을 하던 사위로, 그의 이야기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나는 이제 장인 어른께는 늘상 걱정받아야 하는... 딸을 고생시키는 못난 사위가 되어 버렸다.
장인어른은 오늘도 만나자마자 위암에 걸렸다가 지금은 20년째 잘 살고 있는 옛날 동창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장인 어른과의 통화에서도 두어번은 더 들은 적 있던 이야기였다.
"내 동창이 20년 전 쯤에, 위암으로 수술 받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통 사람이랑 똑같이 밥먹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물먹을 때만 좀 얹힌다고 하대~"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병원 원장이었던 의사친구가 한 이야기나 어떤 버섯이나 약재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쭈~욱 늘어놓으셨다. 아.. 네~ 그렇네요. 그래야겠어요. 하며 영혼없이 적당히 맞장구 치며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넘기고 있었지만, 장인어른은 듣는 사람의 태도 따윈 상관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듣는사람의 반응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본인 할말을 끝까지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장인어른의 강점이다.
지금 우리집에는 우퍼스피커가 달린 라디오가 틀어져있다고 자기최면을 하며, 식후 커피를 다같이 마시고 있는데 장인 어른의 말이 갑자기 내 가슴을 찔렀다.
"집을 더 작은 곳으로 옮기는게 어떠냐. 지금 너가 그러는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갑자기 머리에 피가 쏠리고 열이 확 오르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하면서 암투병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처가에 도움 한 번 달라고 아쉬운 소리 한적이 있던가? 지금 이 절망적인 상황도 걱정시킬까봐 않좋은 이야기 안하고 그냥 적당히 나을 것 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가계가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했을까? 아닌데... 아직은 치료상황이나 재산상황을 봐도, 향후 몇 년은 굳이 신경써서 아낄 필요성도 못 느낄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상황인데?
나는 상상속에서 이를 꽉 물고(실제로는 최대한 평온을 가장해서),
나는 상상속에서 이를 꽉 물고(실제로는 최대한 평온을 가장해서),
그런 부분은 아버님이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라고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안그래도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얼마 남지 않은 자존감 마저 떨어트리러 오셨나?
쓸데없는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는 못 할 망정. 이게 무슨 개소리야.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른다.
요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특별히 감정을 절제할 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큰 시련이 커대한 파도처럼 덮쳤다.
그래... 잘 참았어.
끝나가는 인생이라도, 막나가진 말자.
몸이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며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여
참지 못 한 눈물만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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