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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집 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어째서 그대 보다 강한 방법으로 이 잔학한 폭군인 시간 공격하지 않는가? 어째서 내 불임의 시보다 복된 수단으로 파멸에 처한 자신을 요새처럼 보호하지 않는가? 이제 그대 행복한 시간의 정상에 서 있고 채 가꾸지 않은 지천의 순결한 정원들은 그대 살아 있는 꽃들 심기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대 초상화보다 더 그대 같은 꽃들. 시간의 붓도 내 이 서툰 펜도 그대의 가치 있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양 사람들 눈에 그대답게 생생히 그려 낼 수 없지만, 자식은 그대 그 모습 소생시키리.   그대 내어 주는 것이 그대 영생 가져오는 것.   그대 달콤한 재주로 그려 낸 대로 그대 살게 되리. - 소네트집 1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번역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죽음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였다는 흔적은 나와 그녀가 만나서 사랑하였다는 기록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걸까?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흔적을 지닌 세 명의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눈,코,입... 마음까지 나누어 지니고 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하였던 아내의 어린시절을 간접적으로 나마 보기위해 그렇게 원했던 딸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아들들은 아내의 부분 부분까지 전부 나누어 가지고 있다. 아...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 속에서 남아 있을 수 있겠지. 우리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 헨리 밴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헨리 밴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우리 얼굴은 시원한 빗줄기를 한 번 더 느끼기를 원할 겁니다. 세상에 늘 음악 소리만 들린다면 우리 마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사이사이 달콤한 침묵이 흐르기를 갈망할 겁니다. 삶이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면 우리 영혼은 차라리 슬픔의 고요한 품 속 허탈한 웃음에서 휴식을 찾을 겁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하고싶은대로 하고싶은 것 하면서 마음껏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흔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특별히 이르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않았다. 그저 여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기다릴 뿐 평온하고 쉬운 길 보다는 어렵고 도전적인 선택을 하여 그 험난함과 성취감을 즐기느라 치열한 삶을 살아왔기에 비명횡사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도록 평온한 슬픔의 시간을 마련해 준 암이 조금은 고맙기도 하다.

[책갈피] 가을 어느 날 - 김종해

 가을 어느 날 유모차를 타고 마트에 갔어 엄마가 천천히 미는 유모차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마트 가는 길 가을 햇살이 짜증나 세상에 처음 나왔다가 길거리에 떨어지는 나뭇잎 나뭇잎이 불쌍하다 나는 엄마가 천천히 미는 유모차 안에서 막 소리쳐 우는 거야 내가 소리쳐 우는 이유를 아무도 몰라 아가야, 왜, 아가야, 왜 유모차 지붕 위로 커다란 나뭇잎이 또 한장 떨어졌어 - 김종해, '모두 허공이야' 에서 김종해 시인의 '모두 허공이야' 시집은 첫 장부터 시인의 연륜이 가득 묻어있다. 삶의 대한 시각. 다가오는 죽음. 동네 평상 혹은 정자에 앉아, 초연히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노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시들이 하나하나씩 늘어놓아져 있다. 그런... 조금은 어둡고 메마른 분위기 중간에 놓여있는 이 '가을 어느 날' 이라는 시를 읽고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김종해 시인과 따뜻한 정종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할 기회가 있다면 이 시와 같은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내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 지 남은 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계신지 경청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 해 본다.

[책갈피] 나태주 - 놓아라

  놓아라 우선 네 손에 쥐고 있는 것부터 놓아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놓고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놓아라 내친김에 네가 생각하는 것을 놓아라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놓아라 그 위에 너 자신을 놓아라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다.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나태주 -----------------------------------------------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놓지 못한 것들이 많다.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자 했던 것. 이루어야 하는 것. 그 말을 믿으면, 남은 기간 동안에는 이룰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이제 놓아야 할 것들은 놓고, 현실 적인 것들을 보며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수십여년간 쥐고 있던 것들을 놓으면 비로소 편안해 지는 걸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새끼 손가락에 감겨져 있는 가는 실을 위태위태 하게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