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주치의가 아닌 전문의 진료였다.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루틴한 시기에는 종종 주치의가 아니라 다른 전문의가 대신 진료하는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어제 그 전문의가 했던 말들이 드문드문 떠오르면서, 그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치의가 바뀌었다는 것. 이제부터는 자기가 나를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헐...
이게 왜 이제서야 이해가 됐지? 어제 들었을 때는 그냥 정신이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형태로 있었나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듯이, 내가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물흐르 듯 지나가버린 이야기라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난 누구한테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주치의가 해외연수를 갔다고? 그래서 1년정도 없을 거라고? 난 지금 여기서 이제 곧 죽네사네 하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거에만 의존하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미리 말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아무한테나 나를 훅 던져놓고 가버리는 거야?
처음 서울아산병원에 그 주치의에게 간 것도 아내가 열심히 여기저기 알아보고 믿을 만한 의사를 찾아서 치료를 의뢰했던 것이엇는데, 지금 바뀐 이 전문의는 그 사람의 비해 연차도 적어보이고... 무엇보다 아산병원의 정규직의사도 아니다. 병원 내에서 무슨 힘이 있을 거며... 어떤 인맥이 존재 할지...
그나마 상담하기에는 그.. 친절도가 전의 주치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친절한게 아니지 않는가? 능력이 어느정도 되느냐는 거잖아?
처음 암 진단을 받을 때부터 시작한 내 이력들과, 그동안 이야기 해 온 사정들. 많고 세세한 이슈들.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계약직 의사에게 나를 인계해 버렸다.
물론 기록이야 있지. A4용지로 뽑으로 수백페이지나 되는 내 기록들이. 이 사람 미어터지는 곳에서 하루에 수십명씩 진료를 보면서, 내 기록 꼼꼼히 챙겨 보겠는지 솔직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 뭐 일단 진료받으러 가면 내가 이번에 받는 항암회차도 몇 회차인지 자꾸 틀리게 말해서 내가 직접 정정해줘야 하는 사람이던데?
말도없이 없어진 그 사람이 내게 남겨준 마지막 마지막 몇 주간의 기록에는 말기암에 대한 선고와 암 진행 상황이 빨라 남은 여명이 몇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
치료가 잘 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얼마 남지 않은 수명조차 예정 일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제는 담당했던 의사마저 갑자기 생판 모르는 의사로 바뀐다고? 정말 당혹스럽다.
나 이대로 괜찮을 걸까?
나 몇 달 후에 죽든 말든
어차피 완치되기 힘든 말기암 환자라고
그냥 방치된거지?
나의 이 혼란스러운 마음이야 어찌됐든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이제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따라가겠지.
내가 이 조치를 거부하고 할 수 있는 선택은 이제 기껏해야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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