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떳을 때, 내가 있던 곳은 커다란 방이었다.
이 곳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누워있었다.
나 처럼 수술을 막 마친 환자들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안정을 찾을 때까지 집중 관리하는 곳인 듯 했다.
방 여기저기에서 띠, 띠 하는 기계음과 막 마취에서 깨어난 사람들의 신음소리,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들의 발소리과 말소리들이 들렸다.
나는 아직 몸이 마취에서 덜 풀렸는지 통증이 있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반 쯤은 꿈에 가있고, 나머지 반은 현실에 와있는 기묘한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간호사가 뭐라뭐라 하는데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였던 나는 주변에서 뭐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대로 누워있다보니 얼마 후에 침대 채로 옮겨졌다.
도착한 곳은 병실이었고, 병실에는 눈물자국 있는 아내가 운 듯한, 울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실 침대로 옮겨진 내 손에는 통증이 심할 때 누르라고 한 빨간 버튼이 하나 쥐어져 있었고, 나는 그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시 헤롱헤롱 해지는 기분 때문에 잠들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자다보면 깨워서 체온, 혈압을 재고.
전신마취한 후에 폐를 펴야 한다고 숨을 들이키는 훈련하는 장난감 같은 거 불고.
통증에 약 맞고 다시 잠에 들다 보니,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는 시간이 긴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수술 할 때, 배를 갈라서 위를 빼냈다던데... 문득 내 배의 상태가 궁금해져서 수술 부위를 보니, 배꼽 아래부터 명치 정도까지 일자로 죽 드레싱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른 배를 다시 기워놓은건지 찝어놓은건지, 붙여놓은 거 같은데 이대로 그냥 놔둬서 알아서 아물게 될 거라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배 내부에서 생기는 피나 고름 같은 것을 빼내기 위해, 수술 부위와는 별도로 관이 하나 밖으로 나와서 봉투에 붉기도 하고 노랗기도 한 액체가 조금씩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막 나올때는 소변줄도 달고 나왔었는데, 이건 하루 이틀만에 금방 제거했던 듯 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이제 대변이나 가스가 나왔는지가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된다. 아무래도 가스나 대변이 나와야 정상적으로 신체가 이제 정상흐름으로 돌아왔다는 신호가 되나본데, 이 것 역시도 쉽게 되지는 않았다. 압박하 듯이 가스 소식을 묻는 간호사에게 원하는 답을 해주지 못하면, 이제 걷기 운동을 할 것을 강권한다. 빨리 나으려면 병동 안의 복도를 빙글빙글 걸으면서 회복운동을 하라는 건데, 수술한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걷는게 너무 힘들어서 정말 하기 싫지만, 이것도 주변에서 열심히 채근당하는 바람에 억지로 억지로 하다보면, 며칠 후에는 어느새 멀쩡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건 여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서 나 처럼 개복 수술이 아니라, 복강경 수술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복강경 수술은 몇군데 구멍만 내서 하는 수술이라서 개복 수술보다 수술 후 통증이 덜하다고 하는 것 같다.) 며칠 안되서 멀쩡히 아내와 병동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왜 이렇게 회복이 빠르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복강경 수술은 한 자기는 아직도 이렇게 아픈데 하면서 말이다.
배 속에서 피고름 같은 것들이 좀 덜 나오게 되면, 배액관도 이제 제거 하게 되는데, 이걸 제거 하고 나서부터는 걷기 운동할 때마다 그곳으로 핏물이 자꾸 새서 자꾸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이 쯤엔 매일 걸음 수가 6천에서 8천보 가까이 걷게 되었었다. 참고로 병동 한바퀴는 150보 정도밖에 안되니,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같은 곳을 열심히 돌았다는 뜻이다.)
좀 걷고 있으면 핏물이 새고, 좀 걷고 있으면 핏물이 새고....
그렇게 수술한지 일주일이 되자 벌써 다음날 퇴원해도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인생 처음하는 대수술이었기 때문에, 2주는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였다. 아니, 무엇보다 아직 걸을 때마다 배액관을 뚫었던 곳에 피가 계속 새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진짜 퇴원할 때가 되서 퇴원시킨다는 생각보다는 의정갈등 때문에 그냥 환자들을 최소한의 조치만 하고 쫓아내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래서 이거 아직 피 새는 것도 다 안 멎었는데 괜찮냐는 물음에 담당 전공의는 스테플러로 찍고 나가면 괜찮을거라고 이야기 하면서 잠시 후 정말 배액관의 구멍을 스테플러로 두어번 찍는데, 의술이 뭔지도 모르고 치료 경험도 없던 우리는 정말 당황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핏물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정말 이걸로 괜찮냐는 물음에 전공의도 그냥 괜찮을 거라는 설렁설렁한 답만 배주고 귀찮은지 쓱 가버렸다.
그리고 못 나간다고 병원에 드러누워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새 날의 해는 밝았고, 소심하게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우리의 퇴원 행정처리는 척척 진행되고 말았다.
이 글은 제가 경험한 일을 기억에 의존하여,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적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 글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나 가족 혹은 지인의 처한 상황을 공감하거나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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