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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30일 - 말기 암환자는 종종 눈물을 흘린다.

  몸무게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겨우겨우 지켜온 60kg 대가 한 번 뚫리니, 악재에 떨어지는 주식 차트처럼 바닥없이 떨어질 기세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전부 그들의 일상으로 보내놓고 집에 홀로 남아, 늦은 아침밥을 먹으려는데 음식이 도저히 들어가지가 않았다. 요즘들어 아침에는 장이 완전히 막힌 것 처럼 음식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있다가 저녁쯤 되면 장이 운동할 마음이 생기는지 좀 음식이 들어가는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기어이 죽같은 밥을 한 번 넘겨보겠다고 밀어붙이다 토를 하고 거울을 보니, 갑자기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자기 일을 하러 가고 홀로 남아 적막한 집에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북받쳐 올라 급하게 휴대전화를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와서 좀 도와줘... 도대체 뭘 도와달라는 건지 나도 몰랐다. 모르지만 그냥 와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가만히 들으시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갈떼니 조금만 기다리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 집에 갑자기 준비하고 오려면 사오십분은 걸린다. 전화를 끊고 십분정도가 지나니까 격분한 파도처럼 들어닥치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고, 이성이 사고와 함께 돌아왔다.  어머니가 갑자기 오셔도 뭐 특별히 할 것도 없는데... 왜 불렀지? 갑자기 돌아온 제 정신에 나는 급하게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벌써 출발했어? 응 출발 했어. 금방 갈테니까 좀 누워서 쉬고 있어. 아... 다시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올 정도까지는 아닌데 괜히 엄마 쉬지도 못하게 불렀나 해서... 아냐, 안그래도 오늘 너 혼자있는다고 하길래 한 번 가 볼까 생각하던 참이었어. 금방 도착하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끊어. 쇼파에 멍 하니 앉아있다 보니, 현관에서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어머니가 도착했나 보다. 급하게 도착한 어머니는 운전하면서 우셨는지 눈시울이 붉었다.  ...

소네트집 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어째서 그대 보다 강한 방법으로 이 잔학한 폭군인 시간 공격하지 않는가? 어째서 내 불임의 시보다 복된 수단으로 파멸에 처한 자신을 요새처럼 보호하지 않는가? 이제 그대 행복한 시간의 정상에 서 있고 채 가꾸지 않은 지천의 순결한 정원들은 그대 살아 있는 꽃들 심기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대 초상화보다 더 그대 같은 꽃들. 시간의 붓도 내 이 서툰 펜도 그대의 가치 있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양 사람들 눈에 그대답게 생생히 그려 낼 수 없지만, 자식은 그대 그 모습 소생시키리.   그대 내어 주는 것이 그대 영생 가져오는 것.   그대 달콤한 재주로 그려 낸 대로 그대 살게 되리. - 소네트집 1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번역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죽음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였다는 흔적은 나와 그녀가 만나서 사랑하였다는 기록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걸까?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흔적을 지닌 세 명의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눈,코,입... 마음까지 나누어 지니고 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하였던 아내의 어린시절을 간접적으로 나마 보기위해 그렇게 원했던 딸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아들들은 아내의 부분 부분까지 전부 나누어 가지고 있다. 아...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의 아이들 속에서 남아 있을 수 있겠지. 우리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2026년 3월 26일 - 항암치료를 하는데 왜 발가락이...

  왼쪽 엄지 발가락이 부어올랐다. 통증 자체는 꽤 오래 전 부터 있었지만, 그냥 늘 그랬던 것 처럼 괜찮아지겠지... 하고 잊고 지내다가 오늘에서야 이렇게 부어올랐다는 것을 인식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부었던 거지? 동네 외과에 가보니, 내성 발톱으로 인해 발톱 아래쪽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찬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보통은 왠만한 내성발톱으로는 이정도까지 되지않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며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거 같단다. 아주... 이제는 별에 별 곳이 말썽이구나. 발가락을 조금만 째고 고름을 빼내겠다는데, 마취주사를 맞는게 더 아플거라고 하면서, 마취없이 발톱과 발가락 사이를 칼로 쨋다. 으으으윽...!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큰소리를 지르지 않게 이를 악물며 신음소리를 내면서, 머리 속으로 독립투사님들 떠올렸다. 아... 숭고한 영혼을 지니신 독립투사 선조들이시어. 일제의 고문 기술을 내 이렇게 체험해 보옵니다. 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저도 저의 작고 소중한 존엄을 지키겠나이다. 대한민국 만세... ...... ... .

2026년 3월 22~25일 - 말기암 환자는 감기가 너무 무섭다.

  [3월 22일] 감기 기운이 생겼다. 목에 가래가 끼고, 콧물이 흐르더니 저녁이 되니, 열이나기 시작했다. 열이 나니까 춥고, 기운이 쏙 빠진다. 아무래도 이틀전에 막내가 먹다남긴 밥 한숟기락을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처리해 버린 탓인 것 같다. 음식이 남아 버려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항암 치료를 하면서 애써 눌러왔는데 그 때는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남긴걸 정리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입에 넣고 아차 해버렸다. 뭐 요 밥 한숟갈로 별일 있겠어? 하고 넘어갔는데 결국 이 꼴이다. 38도 이상으로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응급실에 가야한다고 가이드가 있었기 때문에, 비상모드에 돌입했다. 응급실에는 너무 가기 싫기도 하고, 가봤자 어차피 항생제와 해열제를 맞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버텨야 한다. 37.9도. 아슬아슬하다. 해열제를 입에 털어넣고, 제발 열이 떨어지길 빌면서 잠 자리에 든다. [3월 23일] 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 해열제를 먹으면 열이 잠깐 내려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른다. 4시간 간격으로 타이레놀 650mg을 계속 먹었더니 37.3~37.5도 사이로 체온이 유지가 된다.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동내 병원으로 항생제를 받으러 갔지만 아직 항생제 줄 정도의 증상이 아니라고 처방해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의사는 응급실로 갈 것을 권하는데 내가 지금 그 응급실에 안가려고 여기 온 거다!  라고 속으로 외쳐주고, 웃는 얼굴로 무시해 주었다. 그나마 콧물 가래약 정도는 처방을 해 주었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알아서 열 관리 비상모드에 돌입한다. 지침은 가는게 맞겠지만, 약간의 감기기운이 있는 것 말고는 아직은 몸상태가 그리 나쁘지도 않고, 이렇게 별 것도 아닌걸로 매번 응급실에 가서는 몸과 정신이 버텨나기 힘들다. 일단 독감이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 됐다. [3월 24일] 혹시나 단순한 감기가 아닐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증상이 점점 완화되고 있다. 열도 38도 위로는 올라가지 않게 잘 조절된다. 어제까지 힘...

2026년 3월 21일 - 이리노테칸 5회차 + 1일. 부작용이 없어도 불안해

  항암 치료를 받은 다음 날인데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아무래도 울렁거리는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인 듯 하다. 이게 몸이 항암제에 잘 적응한 건지... 항상 있던 부작용이 없으니까 기분이 묘... 하다.  항암제 효과가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인 듯 하다. 허... 참. 부작용이 덜하면 덜한대로 더 좋아해야 하는데 이 것 조차 그냥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 이리노테칸을 맞으면, 장이 열심히 움직인다. 이게 상당히 기분나쁜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 격렬한 장의 움직임이 음식을 잘 넘어가게 만든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덕분에 항암을 하고 난 다음에는 밥맛이 없긴하지만, 먹는 것 자체는 오히려 평소보다 편하게 먹는다.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다. 나는 아무의 방해도 없이, 하루내내 굴을 쓰는 데 집중한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티비나 보면서 멍때리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이상하게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에 못 이기고 이렇게 글 쓰고 있다. 요양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환자가 되어서도,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못 견디는 이 성격에 잠시 쓴 웃음을 짓는다.

2026년 3월 20일 - 이리노테칸 5회차 투여일, 몸 상태와 상반된 CT결과.

  이리노테칸 5회차 항암일. 동시에 2주 전에 찍은 CT 결과를 듣는 날 이기도 하다. 솔직히 많이 각오한 상황이었다. 식사를 하는 양이 점점 줄어드니, 딱히 검사 결과를 듣지 않아도 아.. 암이 또 자라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밖에... 그런데 놀랍게도 CT 결과는 오히려 상태가 더 나아졌다고 한다. 배 속에 차있던 복수의 양도 많이 줄고, 복막의 두께가 전체적으로 얇아졌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식사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건데? 장우회술을 한 부위에 문제가 생겼나? 그 원인이 암이 아니라면 왠지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암 상태가 더 나빠졌다면, 항암제도 바뀌어야 할 테고... 그럼 다른 시도해 볼 약이 또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 수술을 또 해야 하는 지도 결정을 해야한다. 아... 같은 부위에 수술은 다시 못 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식사는 또 링거로만 맞아야 하던가. 이 많은 생각들을 일단 묻어두었다. 암이 문제가 아니라면... 다음 주에는 식사를 못 하는 원인을 찾기위해 내시경 예약을 했다. 수술한 부위까지 막힌 곳이 있는지 내시경으로 직접 확인 해 본단다.  그래. 암만 원인이 아니라면... 내 수명이 조금은 연장되었다고 생각해도 될지  하늘에 묻고 싶어지는 날이다.

2026년 3월 18일 - 말기암 환자는 눈물이 많아진다.

  요즘들어 눈물 부쩍 많아졌다. TV를 보다가 별것도 아닌데도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핑~ 하고 도는 경우가 잦아졌다 요즘 음식물 넘어가는게 점점 안좋아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사가 말한 서너달의 유예가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일까? 솔직히 서너달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이렇게 멀쩡한걸. 음식도 넘어가는게 조금 힘이 들 뿐이지 못 먹는 것도 아니다. 어제는 김치전과 어묵탕이 잘 들어가서 잔뜩 먹고 몸무게가 500g이나 늘었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앞으로 한두달 안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마 먹는 것 때문에 그렇겠지. 지금처럼 서서히 음식물이 안 넘어가기 시작한다면, 이 속도라면 정말 한달 내에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음식을 못먹어서... 이렇게 평온히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소중한... 내 일상. 이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다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PEACE...

빌로이, 쓸 수 있을 때 썼어야 했다. 무지와 안일함이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얼마 전, 의사에게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는 그래도 젊으니 치료를 포기하기에는 좀 그렇고 이제 효과는 떨어지고 비싸기만 한 항암제라도 써야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걸까? 지난 25년 8월에 위암이 재발하여 복막으로 전이되었다. 이 때 내 아내는 내 유전자 검사결과를 토대로 빌로이라는 좋은 신약이 있고, 비싸지만 비급여로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담당 주치의에게 이야기 했더니 담당 주치의는 현재 쓸 수 있는 표준항암치료제가 존재하는데 굳이 그걸 시도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하였다. 이 때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그럼 지금 주치의가 이야기하는대로 하고, 안되면 그걸 시도해 보면 되지 뭐'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제 좋은 치료수단이 다 떨어졌다는 의사에게 물었었다. 빌로이 라는 효과좋은 약이 있다는 데, 내가 마침 그 약이 잘 듣기 위한 CLDN 18.2 양성이잖아요? 이걸 쓸 순 없나요? 그 약은 쓰고 싶어도, 처방이 불가능합니다. 왜요? 효과가 없을까요? 아뇨. 효과는 있을 것 같은데... 처방할 수 있는 기준 엄격해서, 이제는 환자분에게 처방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범법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 효과가 있을 거 같은데, 처방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100프로 자기 부담이어도 현재 내게 그 약이 최후의 보루 같은데... 그러면서, 내게 옵디보라는 면역항암제를 아직 안써서 그걸 쓰게 될 거 같다는 늬앙스를 풍긴다. 내게는 그닥 효과적인 약은 아니지만... 이라면서. 거기다가 나는 급여 대상도 안되서 비급여로 비싸게 써야 할 거란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시츄에이션이다. 이해를 하기 위해 나는 내 검사판독지의 내용을 보았다. --- *C-ERB B2: negative (0/3, no reactivity or <10%) *EBV: negative (<10%) *CLDN18: positive [moderate (2+...

2026년 3월 16일 - 내 몸의 작은 반응에도 약해지는 말기 암 환자의 마음

  몸의 컨디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음식을 넘기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못 먹는 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 무슨 의미일까? 내 복막에 있는 암세포들이 증식해서 또 장을 좁게 만들고 있는 걸까? 이러다 다시 고형물을 못 넘기고, 액체도 못 넘기고 다시 입원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또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날까? 또 한 번의 수술. 영원한 입원. 깊은 잠. 죽은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슬슬 내 인생 마지막 와인을  골라놔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이 오더라도 내 집에서 평온히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